잇단 타협 제안에 일본 무반응 ‘분노’… “실리만큼 국민 자존감 중요” 판단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예상을 뒤엎는 초강수였다. 이달 초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직후 한일관계는 곧장 파국으로 치달을 기세였지만, 최근 들어 소강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다. 광복절 경축사 등에 담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일 발언 수위가 누그러졌고, 일본도 표면적으로는 상황 관리에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미국이 한미일 안보협력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터라 정부가 지소미아 연장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물밑에선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대화로 풀어 보자’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강경론을 고수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이 우리의 모든 외교적 노력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고 했다. 이에 정부는 한일 관계의 판을 다시 짜야 할 때라고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후의 보루로 여겨진 양국 안보 협력까지 포기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은 아베 정부의 행태에 대한 청와대의 실망과 분노가 크다는 방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가 이익이라는 것은 명분이 중요하고, 실리가 중요하고, 국민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게 중요하다”는 말로 지소미아를 종료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한일관계를 감안하면 지소미아를 유지할 명분이 없고, 지소미아 유지로 기대되는 실리가 그다지 크지 않으며, 안보협력에 매달리는 모습이 국민의 자존감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을 “한일 안보협력 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상호 신뢰가 전제인 지소미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국가끼리 국가 존폐와 국민 생명이 걸린 군사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지소미아에 따른 군사정보 교류로 얻는 실효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크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기도 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해 7월에도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검토했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정보의 효율성 자체보다 한일, 한미일이 긴밀하게 정보 공유를 한다는 측면에서 협정을 연장하기로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장관이 지소미아 연장 문제를 먼저 언급했다. 지소미아에 대해선 일본이 더 아쉬운 처지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이번 결정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즉각적 대응 조치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 사사건건 호의적이지 않았던 아베 정부에 대한 피로감이 폭발한 것이라는 것이 여권의 해석이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일본의 한미 연합훈련 연기 반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일본의 회의적 태도 등에 대한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 왔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거의 매일 지소미아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전했다. 반일 감정이 팽배한 만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정권에 큰 상처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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