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로웅 웅 지음ㆍ이승숙 등 옮김
평화를품은책 발행ㆍ416쪽ㆍ1만5,800원
집에서 쫓겨난다. 유랑하듯 세상을 떠돌던 가족은 뿔뿔이 훑어진다. 성인조차 감당키 어려울 시련이다. 이어질 풍파는 더 거세다. 밥 먹듯 굶주리다가 강제로 살인병기가 된다. 역경의 탈출구도 잘 보이지 않는다. 육체적 시련과 정신적 고통이 바통을 주고 받는 일상을 겪는 아이의 나이는 이제 겨우 다섯 살. 고약한 상상력이 빚어낸 픽션이라고 하면 좋으련만, 1970년대 캄보디아에서 있었던 실화다.
1975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중심지에서 살던 소녀 로웅 웅은 행복했다. 아침이면 아빠와 엄마 손을 잡고 거리에 나가 국수 등을 먹으며 하루를 맞았다. 형제자매는 여섯. 다복한 가정은 물질적으로 안정됐다. 자가용 두 대와 트럭 한 대를 보유할 정도로 살림은 넉넉했다. 엄마의 요리 냄새가 선풍기 바람을 타고 집 구석구석 퍼질 때쯤이면 안온한 저녁을 맞곤 했던 어린 로웅 웅에게 전쟁은 존재치 않던 단어였다.
같은 해 4월 17일. 세상은 돌변했다. 검은 반바지와 셔츠를 입고 타이어를 잘라 만든 샌들을 신은 군인들이 프놈펜 시내에 진입했다. 무능하고 부패한 론놀 정권을 뒤집은 크메르 루즈였다. 정보기관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숨을 죽였고, 어머니의 얼굴에는 불안이 역력했다. 군인들은 집을 버리고 도시 밖으로 나가라고 사람들에게 종용했다. 미군 폭격기가 도시를 공격할 수 있다고 겁을 줬지만 실상은 사람들은 모두 쫓아내고 도시를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속셈이 숨어있었다. 사람들은 짐을 이고지고 도시를 떠났다. 로웅 웅도 가족과 함께 집을 나섰다. 크메르 루즈는 3일 안에 되돌아 올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로웅 웅을 제외하곤 가족 누구도 믿지 않았다. 가족의 참담한 시련, 로웅 웅의 역경은 그렇게 시작됐다.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 폴 포트는 농업을 바탕으로 한 이상주의적 공산사회를 건설하려 했다. 자본주의적 삶에 물들었거나, 기존 체제에 협력한 사람들은 방해물에 불과했다. 캄보디아는 200만명의 목숨을 지워버린 살육의 들판으로 변했다. 로웅 웅은 어른도 감당키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며 목숨을 이어가야만 했다.
책은 로웅 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가족과 헤어졌다가 가족들이 다시 만나고 비극적 상황을 맞이하는 과정이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전달된다. 문장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이다. 40여년 전 일이라 해도 소녀의 생존기를 따라가다 보면 여전히 소름이 돋는다. 지구촌 어디선가 여전히 폭압적인 체제에 의해 소년병 소녀병이 양성되고, 사람 목숨이 쉽게 취급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울림이 크다.
저자는 1980년 큰오빠 부부를 따라 탈출에 성공한다. 태국 난민촌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한다. 자신이 겪은 일을 쓴 이 책으로 2001년 아시아-태평양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성인 논픽션 상을 받는다.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는 책을 바탕으로 영화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를 2017년 연출했다. 책의 원제는 ‘First They Killed My Father’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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