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일본의 대(對) 한국수출 규제 조치를 틈타 경쟁사인 삼성전자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 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삼성을 콕 찍어 관세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아이폰에 들어가는 삼성 부품을 중국산으로 교체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22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아이폰의 핵심 부품인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공급업체로 중국 BOE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애플은 현재 BOE의 OLED 인증 막바지 단계에 있고 이르면 연말쯤 BOE를 정식 패널 공급업자로 선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애플은 아이폰용 OLED 패널 공급을 전적으로 삼성디스플레이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BOE가 추가 공급자로 최종 결정되면 삼성이 애플에 공급하는 패널은 그만큼 줄어 들게 된다.
복수의 부품 공급 업체를 확보해 부품 가격을 낮추려는 애플의 전통적인 경영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최대 경쟁자인 삼성 부품을 중국산으로 교체하기 위한 애플의 전략적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애플은 삼성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LG디스플레이의 OLED 물량을 공급받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최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행보는 애플이 삼성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쿡 CEO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중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들어오는 애플 제품은 관세를 내는데, 한국에서 만들어진 삼성 제품에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 것은 불공평 하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쿡 CEO의 의견을 접하고 사흘 만에 두 차례나 직접 삼성을 언급하며 “불공평하다, 애플을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언론에 공개적으로 밝혔다.
미국 정부가 중국에서 생산된 애플 제품에 대해 관세 부과를 완화해 주거나, 반대로 우리 기업의 대미 수출 문턱을 높이는 조치를 취할 경우 북미 시장 환경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지난 2017년 자국 세탁기 산업에 피해가 발생한다며 수입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시킨 적이 있다. 삼성 등 한국기업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는 5G 스마트폰 생산 경쟁에서 한 발 뒤처진 애플이 일본 수출 규제 조치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 없는 삼성을 흔들기 위해 각종 견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전세계 최초 5G 스마트폰을 생산하며, 5G폰을 내놓지 못한 애플을 제치고 북미 시장에서 사실상 독주하고 있다. 삼성은 5G 네트워크 시장에서도 미중 무역 갈등을 틈타 기존 강자 화웨이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애플이 지난 4월 퀄컴과의 특허 분쟁을 마무리 짓고 5G 스마트폰 생산에 본격 나섰지만 빨라야 내년에나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어 삼성과 벌어진 격차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려운 상황이다.하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로 삼성의 OLED 생산 차질 가능성이 거론되자 애플은 바로 부품 교체 카드를 꺼내며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미중 무역 분쟁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애플이 중국 기업을 부품 공급업체로 선정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미국 정부의 공개적인 지원 약속을 받은 애플이 삼성 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선만큼 삼성은 일본, 미국 등에서 여러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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