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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들’ 손현주 “사극 두려웠지만 제가 연기한 한명회를 보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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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들’ 손현주 “사극 두려웠지만 제가 연기한 한명회를 보고 싶었죠”

입력
2019.08.22 19:30
수정
2019.08.22 19:4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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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으로 돌아온 배우 손현주는 “조선시대 백성의 시름을 덜어주던 광대들처럼, 나 역시 남의 옷을 입고 광대로 살아가는 삶이 즐겁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으로 돌아온 배우 손현주는 “조선시대 백성의 시름을 덜어주던 광대들처럼, 나 역시 남의 옷을 입고 광대로 살아가는 삶이 즐겁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선역과 악역을 넘나들고, 주연과 조연, 때로는 특별출연도 마다하지 않으며, 장르영화부터 통속극까지 폭 넓게 아우른다. 30년 관록이 필모그래피 마디마디에서 배어 난다. 그렇기에 더욱더 뜻밖이다. 사극 영화 출연은 ‘광대들: 풍문조작단’이 처음이라고 한다. ‘명배우’로 손꼽히는 손현주(54)에게도 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니. 지난 2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한 그는 믿기지 않는 고백으로 말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사극을 피해 다녔어요. 촬영 중 낙마해 부상당한 트라우마도 있었고, 사극의 대사나 묵직한 분위기에 내가 섞일 수 있을까.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죠.”

손현주의 마음을 움직인 건 캐릭터였다. 조선 세조 시대 권력가 한명회. 멀게는 1984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와 1994년 KBS ‘한명회’에서, 가깝게는 2013년 영화 ‘관상’에서, 수 차례 다뤄진 권모술수의 지략가. ‘광대들’에서는 기발한 상상이 더해졌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를 위해 광대패를 발탁, 왕에 대한 미담을 꾸미고 퍼뜨리는, 거대한 여론조작의 기획자다. 요즘 시대로 환원하면 광대패는 댓글부대, 한명회는 국정농단의 주역인 셈이다. 손현주는 “이런 캐릭터 해석은 처음이라 상상만 해도 흥미로웠다”며 “내가 연기하는 한명회는 어떤 모습일지 나도 궁금했다”고 말했다.

현주의 묵직한 연기가 관객을 압도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현주의 묵직한 연기가 관객을 압도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광대들’은 21일부터 관객을 만나고 있다. 관람평은 조금씩 갈리지만 손현주 연기에는 감탄 일색이다. 한명회가 되기 위해 뾰족한 귀 모형을 붙이고, 옷을 여러 겹 입어 체구도 육중하게 불렸다. 푸근한 인간미는 싹 지웠다. 형형한 눈빛과 낮은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마치 살아 있는 권력을 대면한 듯한 공포까지 자아낸다. “한명회가 압구정이라는 정자도 짓고, 당시 70세 넘게 살았으니 천수를 누렸다고 볼 수 있겠죠. 성종과 예종도 사위였으니 말년까지 권력을 쥐었을 테고요. 그렇지만 역사는 반란으로 기록했어요. 세조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오른 권좌인데 고작 13년 재위하고 끝났죠. 그런 걸 보면 권력이란 참 덧없지요.”

이 영화를 찍었던 지난해 여름엔 폭염이 극심했다. 날마다 서너 시간씩 걸리는 분장과 두꺼운 의상 탓에 꽤 고생스러웠다. 손현주는 기꺼이 즐겼다. 더 나아가 도전심도 품었다. “촬영할 때는 사실 상당한 중압감을 느꼈어요. 다 마치고 나니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왕부터 천민까지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고 싶어요. 특히 광개토대왕 역할은 꼭 한 번 도전하고 싶네요.”

특유의 편안함과 너그러움이 연기에도 묻어나서일까. 손현주를 좋아하는 10, 20대 팬도 많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특유의 편안함과 너그러움이 연기에도 묻어나서일까. 손현주를 좋아하는 10, 20대 팬도 많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최근까지 손현주는 ‘한국의 리암 니슨’이라 불렸다. 영화 ‘숨바꼭질’(2013)과 ‘악의 연대기’ ‘더 폰’(2015), tvN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2017) 등 스릴러ㆍ범죄물에서 존재감이 돋보였다. 그 이전에는 SBS ‘추적자’(2012)와 KBS ‘솔약국집 아들들’(2009) 등 평범한 소시민을 대변하는 얼굴이었다. 손현주는 “‘광대들’을 선택한 데는 ‘갈증’도 한 가지 이유였다”며 “최근 5, 6년 사이에 어두운 작품을 많이 하다 보니 편안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편안함’, 손현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카메라 밖에서 그는 한결같이 수더분하다. 촬영을 마친 뒤 편의점에서 사 온 막걸리로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좋아하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틈틈이 점심 식사 메뉴를 고르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인터뷰 전날 밤 KBS ‘저스티스’ 촬영을 마친 뒤에도 매니저와 포장마차에서 소박하게 소주잔을 기울였다. 손현주는 “혹시 인터뷰에 늦을까 봐 인근 숙소에서 자고 왔다”며 껄껄 웃었다. “죽을 때까지 흐트러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그는 그렇게 지키고 있었다. “커다란 욕심은 없어요. 다만 숨이 붙어 있는 한, 연기를 계속 하고 싶어요. 늘 편안한 사람으로 곁에 머무는 것. 그거면 됐죠, 뭐.”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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