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재차 反이민 정서 자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정 출산’ 문제를 언급하며 미국 출생 시민권 제도 폐지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AP 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참전용사단체 행사 참석을 위해 켄터키주로 떠나기 전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출생 시민권 문제를 대단히 심각하게(very seriously)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경을 넘어와 아기를 낳으면 ‘축하합니다. 이제 아기는 미국 시민입니다’ 같은 상황이 되는데 “(이것은) 솔직히 웃기는(ridiculous) 일”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시민권 부여와 관련 속지주의(태어난 국가의 국적을 얻을 수 있다는 원칙)에 따라 출생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을 적용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반면 원정 출산으로 태어난 아기를 ‘앵커 베이비(anchor baby)’라 부르는 등 외국인의 원정 출산에 대한 미국 내 반감은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앵커 베이비는 불법 이민자 부모가 미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닻을 내려준 아기라는 조롱 투의 표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 역시 미국의 출생시민권을 폐지하겠다는 뜻으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반(反)이민 정서를 재차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야당인 민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불법 이민자 유입 차단 정책을 펴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실제 그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도 출생시민권 폐지 의지를 밝히는 등 정치적 고비 때마다 이를 끄집어내 보수층 유권자 결집에 활용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출생시민권을 폐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속지주의에 따른 출생시민권은 남북전쟁 뒤 노예 해방된 흑인들에게 미국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해 1868년 수정헌법 14조에 명시돼 있다. 따라서 출생시민권 폐지를 위해선 헌법을 고쳐야 하는데, 이는 연방 의회 3분의 2 이상, 주 의회 4분의 3 이상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으로 철폐할 수 있다는 입장이나 이 역시 위헌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 원정출산에 나서는 사례의 규모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진 않다. 미국 보수성향 단체인 이민연구센터에 따르면, 2012년 기준 3만6,000여명이 미국에 와서 아이를 나은 뒤 출국했다고 한다. 한국 역시 이중 국적 지위를 이용, 자녀의 병역 면제를 위해 미국으로 원정출산을 떠난 사례들이 드러나며 사회적 물의를 빚어왔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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