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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부간 강경 국면으로 강제동원 배상논의 미뤄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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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부간 강경 국면으로 강제동원 배상논의 미뤄선 안돼”

입력
2019.08.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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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공은 상대 코트에 넘어가 있다” 주장보다 적극 대화 나서야

日 기업ㆍ피해자 간 화해 사례 3건… 아베 정권 압력으로 태도 바꿔

日 언론들도 “강제동원 배상은 1965년 협정으로 끝났다”는 입장

역사 교육ㆍ피해자 증언 등으로 당시 피해에 대한 공감 확산시켜야

야노 히데키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자 보상입법을 목표로 하는 일한공동행동 사무국장이 17일 도쿄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양국 정부에 대화를 통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야노 히데키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자 보상입법을 목표로 하는 일한공동행동 사무국장이 17일 도쿄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양국 정부에 대화를 통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자 보상입법을 목표로 하는 일한공동행동 사무국장은 강제동원 배상을 둘러싼 한일갈등이 악화하는 상황에 대해 “양국 정부는 ‘상대 코트에 공이 넘어갔다’며 서로에게 미루지 말고 대화에 나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20년 이상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강제동원 배상소송을 이끌어온 그는 “정부 간 강경 대응을 주고 받으면서 강제동원 배상논의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과 대화에 나서지 않는 것에 대해선 “일본에서도 자민당 정권에서 가해 기업과 피해자들 간 화해를 용인한 적이 있다”며 “현재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압력으로 기업들이 입장을 바꾼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17일 도쿄(東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인터뷰한 후 이메일을 통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의견을 추가로 들었다.

_일본이 한국에 수출 규제를 강화한 배경은 무엇인가.

“당연히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다. 지난달 1일 경제산업성이 ‘한국이 징용문제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했고, 3일 아베 총리는 ‘국가 간 약속을 지키지 않아 우대조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 서투른 대응이라는 지적을 받자 ‘안전보장상 이유’를 강조하고 있지만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_일본 언론들도 처음에는 경제 보복이라고 비판하다가 점차 정부 측의 조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게 문제다. 다수 언론들은 일본의 조치에 대해 대법원 판결의 대항조치라고 지적했다. 그러다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정 전후로 이를 계속 비판하는 언론들이 줄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주장하고 있는 ‘안전보장상의 이유’가 무엇인지 끝까지 파고드는 매체가 없다. 정부에 대한 손타쿠(忖度ㆍ윗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알아서 행동함)이랄까. 정부에 동조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일본 언론들도 강제동원 배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끝났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_그렇다 보니 일본의 일반 여론들도 한국에 대한 조치를 지지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당시 일본 정부의 태도는 간명했다. 첫째 국제법 위반, 둘째 이미 해결된 일을 한국이 다시 문제 삼고 있다, 즉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라는 점. 이를 반복하다 보니 일반 국민들에게도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언론과 일반인들도 피해자들이 어떤 주장을 해 왔고 어떤 재판 과정을 거쳐, 어떤 내용의 판결이 나왔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처럼 반론하는 사람들은 사실관계를 바로 잡으면서 설명해야 하는 반론의 과정이 길 수밖에 없다.”

_한국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방송에도 많이 등장한다.

“신문도 그렇지만 TV에서 매일 방송하는 정보 프로그램만 봐도 출연자들이 정부 주장을 반복하고만 있지 않나. 나는 그런 정보 프로그램을 자주 보지는 않지만, 출연자들 가운데 전문가들이 별로 없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 나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시청자들이 그대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방송에 출연해 그나마 한국에 대해 정상적으로 말하는 교수들은 학교로 항의 메일이 올 정도라고 한다.”

_아베 정권은 식민 지배 당시의 사실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제 침략과 당시에 있었던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인정하거나 사과할 마음이 없다. 2015년 패전(종전) 70주년 담화도 그랬고, 15일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깊은 반성을 언급한 일왕과 달리 7년째 가해 책임과 반성을 언급하지 않고 있지 않나. 침략에 대해 한번의 사과로 끝내지 않는 독일 등의 태도와도 크게 다른 점이다.”

야노 히데키(왼쪽부터)씨가 지난해 12월 4일 도쿄에서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 측 변호인인 임재성, 김세은 변호사와 함께 신일본제철 본사에 대법원 손해배상 판결의 이행을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하고자 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야노 히데키(왼쪽부터)씨가 지난해 12월 4일 도쿄에서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 측 변호인인 임재성, 김세은 변호사와 함께 신일본제철 본사에 대법원 손해배상 판결의 이행을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하고자 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_한일 변호사ㆍ시민활동가들이 11일 양국 정부에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한 배경은 무엇인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이어 한국에선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이 확산되면서 문제의 본질인 강제동원에 대한 논의가 뒤로 밀리고 있어서다. 갈등 해결을 위해선 대법원 판결을 어떻게 이행할지를 논의해야 하는데 그런 환경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_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정부 간 대화에 영향을 줄 수 있지 않나.

“한국 측이 이번 발표에서 일본 측과의 신뢰 훼손을 이유로 들었기 때문에 정부 간 신뢰악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려되는 점은 강제동원 문제 해결은 정부 간 교섭이 필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해법을 찾는 논의가 더욱 멀어지게 되지 않을까 한다. 양국 정부가 피해자 배려와 인권 회복을 위한 대화 환경 조성에 보다 힘써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_일본에선 한국의 불매운동 등을 반일(反日) 움직임이라며 우려하는데.

“광복절에 광화문광장에 나가봤는데 가족ㆍ커플 단위의 집회 참가자들이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촛불집회와 같은 느낌이었고 과도한 내셔널리즘은 아니어서 안심했다. 그들은 ‘NO 아베’를 외치고 있는 것이지 일본 국민 전체를 싫다고 말하는 게 아니지 않나. 한일관계는 정치가 전부는 아니다.”

_일본 기업들은 왜 피해자들을 배상을 협의하지 않나.

“1997년 일본제철과 1999년 일본강관, 2000년 후지코시(不二越)는 피해자와 화해한 전례가 있다. 당시 자민당 정권은 기업의 화해를 용인한 것이다. 2012년 대법원 파기 환송 이후 일본제철은 주주총회에서 “판결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2013년 7월 서울 고등법원이 처음으로 피해자의 청구권을 인정하자, 산케이(産經)신문은 그 해 8월 일본제철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 의향을 보이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기업들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아베 정권과 보수 언론의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

_일본 정부가 ‘1+1안’(한일 기업이 기금 마련)을 거부했는데.

“강제동원의 책임은 일본 정부와 기업에 있다. 일각에선 한국 정부와 기업이 기금을 마련하고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열어두는 ‘2+0’, ‘1+1+α’ 등의 방안을 거론한다. 그러나 가해자가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는 방안은 있을 수 없다. 1965년 협정에 따라 일본 정부가 5억달러의 경제 협력한 사실을 인정한다고 양보해도, 가해 기업들은 분명히 책임지는 방안이어야 한다. 한국 측은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일본 측은 1965년 이후 인권에 대한 규범과 인식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 정부도 원하는 방안이 있다면 한국 측에 먼저 제시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_일본 국민들에게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피해자들이 일본에 건너와 소송을 시작한 게 1990년대였다. 당시 관심을 보이는 시민들과 언론이 있었지만 2000년대 일본에서의 재판이 모두 끝나면서 강제동원 피해를 모르는 사람이 다수가 됐다. 언론도 1965년 협정으로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그만큼 역사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후지코시에서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김정주 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14살 때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본에 와서 금속을 깎는 선반 작업을 했다. 공습으로 신발을 벗고 자본 적도 없다고 했다. 일본인들이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면 당시 일본이 한 일을 인식하고 피해자에 공감할 수 있다. 1965년 협정으로 해결됐는지 여부와 별개로 인권문제로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뭔가 배상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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