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입심이 화를 부른 걸까.
이용섭 광주시장이 말 한 마디 때문에 자신이 임명한 광주시 인권옴부즈맨에게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조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였다. 지역 인권단체들이 2019광주세계수영대회 기간(7월 12~18일) 각종 시위나 집단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했던 이 시장에게 해당 발언을 공식 취소하도록 해달라는 진정서를 인권옴부즈맨에 내기로 하면서다.
광주세계수영대회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달 10일 이 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회 성공은 성숙한 시민의식에서 시작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 시장은 호소문에서 “선수촌이나 경기장 주변에 집회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회 기간 각종 시위나 집단행동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시장은 이어 “우리 내부 문제를 대회 기간 중 집단행동을 통해 해결하려는 건 광주시민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것이며, 광주정신인 민주ㆍ인권ㆍ평화의 가치를 왜곡시키고 광주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광주를 찾는 세계인들에게 지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으니 집회를 자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는 광주지역 자치구 공무직 노동조합 등 10여개 단체가 대회 기간 경기장 주변 등지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를 해놓은 상태였다. 이 시장 발언을 두고 일각에선 “노동 3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유감 표명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 시장의 호소는 대체로 먹혀 들었다.
그러나 대회가 끝난 뒤 이 시장의 발언은 자신을 옥죄는 부메랑이 됐다. 광주인권회의가 “이 시장 발언은 개인(자연인)이 아닌 광주를 대표하는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말”이라며 이 시장이 호소문을 공식 취소하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새로운 입장문을 다시 발표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시장의 호소문은 현재도 광주시 홈페이지에 공식 입장문 형태로 공개돼 있다. 광주인권회의는 26일 이런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인권옴부즈맨에 내기로 했다. 광주인권회의는 “이 시장의 집회행동 자제 발언은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관점의 발언으로 문제가 있다”며 “이 시장의 말대로 광주가 민주ㆍ인권 도시라면 이런 것(집회)도 포용하고 관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광주인권회의는 또 “자기 나라의 문제점에 대해 얼마나 객관적으로 인식하며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가는 해당 국가의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라며 ”광주시가 해야 할 일은 집회의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집회 자유가 부당하게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ㆍ행정적 조치에 힘쓰는 것”아라고 일침했다.
광주인권회의가 이 시장을 상대로 진정을 내기로 하면서 관심은 인권옴부즈맨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쏠리고 있다. 당장 ‘인권도시’ 광주를 대표한다는 이 시장이 인권옴부즈맨에게 조사를 받아야 하거나, 조사 결과에 따라 입장문을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권옴부즈맨이 직권 조사라는 카드를 꺼내 이 시장에게 진정 내용에 대한 보고나 출석, 진술을 요구한다면 이 시장으로선 체면을 단단히 구길 수밖에 없다.
시 관계자는 “통상 인권옴부즈맨에 진정 사건이 접수되면 진정인 조사를 통해 조사 절차를 밟는데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각하하고, 조사 후 인권문제와 무관하다면 기각한다”며 “광주인권회의의 진정 내용을 보고 향후 조사 계획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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