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 행동 회원 등이 기준 중위소득 인상 및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나 더 많은 이웃들이 죽어야 가난이 ‘죽을죄’가 되는 사회가 끝날 것인가. 2014년 2월 송파구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의 충격적인 죽음은 경제성장의 풍요 뒤에 가려진 한국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깊은 탄식이 사회 곳곳에서 흘러나왔고, 다시는 그런 참담한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각성이 이루어진 듯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송파구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일은 반복되었고, 한국 사회는 또다시 북한 이탈 모자의 참담한 죽음을 마주했다.

도대체 국민 누구나 문화적이고 인간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제도화되었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거짓말이었다. 권리가 아니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상자가 되려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자신이 일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신이 빈털터리이고, 자신을 부양할 가족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주위로부터 모멸감과 낙인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치러야 할 형벌이었다. 인권과 시민권은 사치처럼 취급되었다.

빈곤사회연대와 한국도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신청자들은 신청 과정을 “진짜 죽고 싶고 힘들었다”라며 “서류 떼고 동에 갈 때는 정말 죄인 같았다”라고 고백했다. 실제로 신청 과정에서 우리의 이웃은 수많은 서류를 통해 스스로 가난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고, 시도교육청, 국민연금공단, LH공사 등으로부터 근로능력, 가족관계, 재산 상태까지 모든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수급자가 된다는 것은 시민이 죄인으로,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는 과정이자, 가난하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징벌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하면 가난이 죽을죄가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수천억을 들여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만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한국 사회가 복지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고, 그 가난의 책임은 가난한 사람 스스로에게 있다는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찾아가는 시스템을 촘촘히 준비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한국 사회의 인식이 변화하지 않는 한 수급자가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모욕감과 낙인을 견디며 스스로 가난하고, 무능력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수급자가 되는 동시에 2등 시민으로 전락하는 사회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다.

물론 단기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과 당사자가 스스로 수급 자격을 입증해야 하는 ‘당사자 입증주의’를 폐지하고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복지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 복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누려야 하는 기본권이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를 보편적 복지국가로 전환시키지 않는 한 복지를 수급하기 위해 시민 스스로 가난을 입증하고, 모멸과 낙인을 견디는 과정에서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취학 자녀가 있다면 재벌 집이든, 중산층이든, 저소득층이든 누구나 아동수당을 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시민 누구나 필요에 따라 자산과 소득조사라는 모멸적인 징벌의 과정 없이 복지를 수급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복지가 모든 시민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보편적 권리라면 가난한 시민이 수급권을 얻기 위해 낙인과 모멸을 겪어야 할 이유도, 죽음을 강요받을 이유도 없다.

가난이 죽을죄가 되는 사회라면 대한민국에 희망은 없다. 복지는 부자이든, 중산층이든, 가난하든 모든 시민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가난은 ‘죽을죄’가 아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