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덕 일제강제동원피해지지원재단 이사장 인터뷰

김용덕 이사장은 2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만 있었던 것도, 친일파만 넘쳤던 것도 아니고 덧없이 사라진 사람들이 훨씬 많다"며 "피해자 배상, 보상을 넘어 이런 인도적 평화재단을 만들어 같은 처지의 중국, 대만 등과 연계해 사업을 벌이면 일본의 동참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지 않겠나”고 말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한일협정으로 수혜를 본 우리 기업과 징용 노동력을 썼던 일본 기업이 돈을 내 피해자를 돕는 게 최선이지만 한일 기업 모두 돈을 낼 의사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게 현실이다.”

2014년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김용덕(75) 이사장은 2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 모금 캠페인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사 문제로 한일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징용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와는 달리 1965년 한일협정 당시부터 양국 간 논의 대상이었다. 50년도 더 지난 문제가 해결은커녕 더 큰 한일 간 장애물로 등장한 셈이다. 일본을 향해 충분한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편으로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징용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근대사를 전공한 뒤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초대 국제대학원장 및 일본연구소장을 지낸 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행정안전부 산하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이끌고 있는 김 이사장에게 피해자 국내 지원의 실태와 징용 문제의 해법에 대해 들었다.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징용 피해자에 대한 위로금 지급 등 사업이 미흡했다는 정부 판단에 따라 출범했다. 특별히 어떤 점이 미흡하다고 본 것인가.

“피해자나 유가족 처지에서 보면 한이 없을 테지만 주로 재정적인 지원 요구가 많다. 독립유공자 가족처럼 장학금을 달라는 경우도 있고, 후유증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사람들은 연간 80만원의 정부 지원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유해를 빨리 찾아달라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업에 역점을 두어 왔나.

“추모가 중요 사업 중 하나다. 남태평양 등에 유족들과 함께 가서 유해가 흩어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참배한다. 오는 9월에도 팔라우 참배를 계획하고 있다. 부산에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생긴 뒤로는 그곳에서 매년 합동위령제도 지낸다. 일제강점기 징용자들이 부산에 모여 출발한 데다 마침 부산에서 땅을 제공해 세운 기념관이다. 전국에서 300명 정도 유족들이 모인다. 역사관 내에 위패관이라는 공간도 만들고 있다. 징용된 뒤 숨진 것으로 이름이 확인된 사람의 신주를 모시듯 하자는 것이다.”

-유해 봉환에 어려움은 없나.

“유해 봉환은 지난해부터 적극 하고 있지만 과학적 조사가 어려운 데다 위치가 해외에 흩어져 힘들다. 설사 묻힌 곳을 알아도 사유지면 접근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일본 외 지역 봉환은 사실상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당 지역에 추모비를 세우는 정도다. 최근 알려진 중국 하이난도의 천인갱 유골도 지난해부터 총리가 관심을 표시한 덕에 유전자 감식이나 봉환 계획이라도 세우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 전 재단 직원이 가서 상세 조사를 하려고 했으나 중국 공안이 막는 등 어려움이 있다.

일본에서 발굴ㆍ수습된 유해는 정부 간 협조만 잘 되면 돌아오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도쿄 고쿠헤이지(國平寺), 유텐지(祐天寺), 오사카 도코쿠지(統國寺) 등에 수습된 유골은 일부나마 국내로 봉환이 됐다. 피해자 출신지가 북한 지역인 경우도 있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나서 남북 협력사업으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추모도 중요하지만 징용 피해자들의 요구를 봐도 그렇고, 현재 국민적 관심을 감안하더라도 재단의 활동이 충분해 보이지는 않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 7,000억원에 가까운 위로금이 지급됐다. 1인당 평균으로 치면 700만원쯤은 될 것이다. 보상금 지급을 놓고 요즘 자주 거론되는 독일의 ‘기억책임미래재단’보다 평균 수령 액수로 치면 더 많을 것이다. 기억책임미래재단이 유명해진 것은 그 사업이 한 번의 보상으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자 접수 창구를 계속 열어 놓았고 남은 기금으로 나치의 전쟁범죄 현장을 찾아가 보존하고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등 미래를 위한 사업을 적극 펴고 있다.”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도 기부금 모금을 하고 있지 않나.

“한일협정으로 수혜를 본 우리 기업과 징용 노동력을 썼던 일본 기업이 돈을 내서 피해자를 돕는 게 최선이지만 한일 기업 모두 돈을 낼 의사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게 현실이다. 다행히 재단 출범 때 포스코가 100억원 기부를 약정해 지금까지 60억원을 냈지만 나머지 40억원은 지난해 우리 대법원 판결로 징용 문제가 외교 현안이 된 뒤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주춤하는 것 같다.

포스코 말고도 수혜 기업으로 따지자면 수자원공사, 도로공사, 옛 외환은행 등이 있지만 그 중 일부가 기부 의사를 밝혔을 뿐 성과는 없다. 재단이 기부 창구를 열어 놓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좀 더 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징용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같은 때에 굳이 수혜기업으로 한정할 것 없이 국민 모금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하는 마음까지 든다.“

-지난해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갈등이 심각하다. 대법원 판결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일 관계가 가뜩이나 좋지 않는 상황에서 판결이 나와 문제가 커진 측면이 없지 않지만 판결 자체는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국제법에서 따지는 인권에 반하는 범죄를 전쟁 중 포로 부당 대우, 민간인 살상 등으로만 생각하는데 강제동원도 엄연히 거기에 포함된다.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서도 처벌을 명문화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협약에서 강제노동을 처벌토록 하고 있다. 그 협약이 생긴 게 1930년이고 일본이 ILO에 가입한 게 1932년이므로 준수 의무가 있다.

전쟁을 이유로 내팽개쳐진 인권은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문제로 넓혀서 봐야 설득력을 얻고 국제사회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의 양심세력과 연대할 수 있는 접점도 된다. 징용 문제도 이런 국제적인 연대로 풀어가야 한다. 위안부 문제의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된 사례를 참고로 할 수도 있지 않겠나.”

-일본 정부는 한일 기업이 공동으로 출자한 재단 설립을 통해 징용 문제를 해결하자는 우리 정부 제안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정부가 구상한 ‘1+1 방식’은 좋다고 본다. 그 방식에 합의해 기금이 조성되면 분배는 국내에서 책임지고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포스코 같은 경우는 이미 이런 식의 기금 조성에 응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정부만이 아니라 여론조차 청구권 문제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일본 역사를 전공했지만 일본에 대해 환멸감을 느낄 때가 더러 있다. 1995년 도쿄에서 ‘해방 50년, 패전 50년: 화해와 미래를 위하여’를 주제로 열린 한일 학술회의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지명관 선생이 다리를 놓고 강원룡 목사와 일본 이와나미서점 사장이 의기투합해 마련된 지식인 대화였다. 행사장 밖에서 일본 우익들의 성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발표와 토론이 끝나고 청중과 대화 시간에 한 일본인이 자신은 전후 세대인데 조상의 짐을 언제까지 져야 하느냐고 묻더라. 언제까지 계속 사죄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일본인의 국가 의식을 참으로 답답하다고 여기면서 당신은 일본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왜 의식하지 못하느냐고 되물었다. 긍정의 역사도, 부정의 역사도 지금을 사는 개인에게 녹아 들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독일은 2차대전 이후 태어난 사람도 부끄러운 과거사를 안고 가지 않느냐, 그러니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독일을 믿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일본보다 더 분명하게 과거와 단절을 한 독일은 여전히 그 짐을 지고 가려는데 일본은 그러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일본인의 인식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일본 사람한테 독일 이야기하면 싫어 한다. 아마도 일본에 독일식 과거사 극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후 세대라서 과거사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사람들은 일본 내 비판적 지식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인식을 바꾸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한일 갈등을 풀어갈 때 이처럼 현실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우리 마음에 안 든다고 싸우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담이 붙은 이웃이 있는데 그 집이 그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이사를 갈 수 없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상태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이웃에 걸맞은 정도로 그냥 쿨하게 대접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일본에 너무 기대를 해서 실망할 게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가 그 정도라고 보자는 거다. 한일은 그런 냉정하고 객관적인 정도의 관계 유지가 현실적일 수도 있다. 한일 갈등을 양국의 특수한 문제로 좁혀 볼 것이 아니라 보편적 시각으로 파악하고 대응하는 훈련을 할 필요도 있다. 그러면 한일도 서로 멸시하고 싸우던 독일과 프랑스가 지금 편한 이웃으로 변한 것처럼 될지도 모른다.“

-징용 문제에 그런 방식을 접목한다면.

“이 사안을 전쟁에 동원된 사람만의 문제로 보지 말고 인권과 평화를 촉진하는 계기로 확대해야 한다. 역사에는 밝은 면만 있는 것도, 어두운 면으로 가득 찬 것도 아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만 있었던 것도, 친일파만 넘쳤던 것도 아니다. 덧없이 사라진 사람들이 훨씬 많다. 단지 피해자 배상, 보상을 넘어 이런 인도적 평화재단을 만들어 같은 처지의 중국, 대만 등과 연계해 사업을 벌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일본의 동참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지 않을까.”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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