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113)] 억만 가지 매력, 이란 북서부 로드 트립 
붉은 색을 입은 타브리즈~아하 구간 산 능선. 제법 완만해 보이지만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가파르다.

제한된 정보와 무관심 때문에 지금까지 이란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란 북서부 로드 트립은 고대 인류에 대한 탐험이자 이란의 억만 가지 매력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웃으며 달리고 감동하며 달렸다. 종종 이란을 그리워할 때면 기억 창고 속에서 되살아날 길들, 그중에서 4가지를 추렸다.

 ◇전 세계 로드 트립의 필수품, ‘맵스미(maps.me)’ 

가끔 멀쩡한 도로보다 샛길로 안내한다는 단점(길이 종종 끊겨 있다)이 있으나 이처럼 요긴한 내비게이션 앱이 없다. 비싼 데이터 요금을 감당하기 힘든 장기 여행자에게 오프라인 구글맵의 효력은 미미하다. 유효기간이 한 달뿐이고 다운로드할 지역의 크기가 제한적이다. 맵스미는 국가에 따라 동서남북이 다르게 표시되는 경우가 있으나 나라 전체 지도를 통째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가령 아르헨티나는 9개 파일). 이란은 북ㆍ남ㆍ동쪽 3가지 지도로 구분되며, 단점인 샛길 안내가 장점이 되기도 한다. 대중교통 안내는 빵점이니 렌터카용으로만 감사히 이용할 것. 팁 하나를 더 보태자면 대략 거리(Km)만 인지하고 예상 소요 시간은 믿지 말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로 사정과 별개로 말도 안되게 길거나 짧은 경우가 다반사다. 기사에서 모든 지명은 ‘맵스미’에 기록된 알파벳으로 표기했다.

 ◇이제흐(Izeh) – 슈슈타르(Shoushtar) 
슈슈스타 관개시설의 과학에도 놀랍지만, 존재 자체도 암벽 위에 지어진 걸작이다.
야생화가 적재적소에 피어난 듯한 카룬강과의 조화. 카룬강은 서울~부산 왕복보다 긴 약 950km에 달한다.
겨루듯 뽐내는 산 풍경이 있다면 바로 여기다.
오르락내리락 한적한 도로, 운전할 맛 난다.

이란의 지독한 무더위에도 참 시원한 길이다. 눈에 박하 향이 나는 듯 시야가 뻥 뚫린다. 아스팔트 도로는 마른 풍경 한가운데를 미끄러지듯 빠져 산을 굽이굽이 넘어간다. 숨바꼭질을 하고 싶은 걸까. 저마다 다른 양감과 질감의 산과 들판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나이테를 그린 암벽과 야생화의 궁합에 황홀해질 때쯤, 이란에서 가장 긴 카룬강을 야속하게 스친다. 걱정 마시라. 이 강의 절정은 슈슈스타에서 확보된다. 슈슈스타 관개시설(Shushtar Historical Hydraulic System)이 사산왕조 시대에 완성된 천재적인 물길을 선보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고대의 수력발전소다. 오늘날의 댐처럼 물을 낙하시키는 기술을 가미해 물레방아로 수로가 열리고, 수력으로 밀을 도정하고 빻았다. 3세기의 물길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반사막(semi-desert) 지대임에도 남쪽의 평야가 비옥한 이유다. 2004년 유네스코에 ‘걸작’이란 훈장을 달며 등재됐다.

 ◇쿠다슛(Kudasht) – 쉬레즈 캐니언(shirez canyon) 
‘이란’표 그랜드캐니언. 계곡 속으로 바람이 빨려 들어오고 땀이 기분 좋게 마른다.
‘이란’표 그랜드캐니언. 계곡 속으로 바람이 빨려 들어오고 땀이 기분 좋게 마른다.

쉬레즈 캐니언은 전망과 별개로 인간에게 넉넉하게 자리를 내어주는 협곡이다. 짧은 트레킹도 재미다.
비포장도로가 시작될 때쯤 선사하는 풍경.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어도 좋다는 표식이다.
푸르지 않아도 시원한 황금빛 벌판.
작은 마을 앞 도로에서 만난 것은 양 떼.

뜻밖에 황금빛 카펫이 펼쳐진 길이다. 야생화는 바람에 따라 잦은 고갯짓을 한다. 낮은 산 능선이 인도하는 길에 양 떼가 살가운 교통체증을 일으킨다. 창문을 열면 한여름에도 선선한 바람이 들어온다. 희미하게 보이던 협곡이 명징해질 때쯤 세이마레 강줄기의 소리도 강해졌다. 거친 협곡에도 사람은 살았다. 작은 마을이 협곡의 가슴에 폭 안긴 채 평화롭다. 쩍 벌어진 협곡의 웅장함에 놀라고, 그 디테일에 감탄한다. 인간의 뼈 모양으로 암벽을 이어 붙인 걸까? 저 날카로운 암벽 위에서 어찌 나무가 커가는 거지? 1,000년이 넘는 시간의 공이리라. 챙겨 온 과일을 물줄기에 씻어 그늘 아래에서 협곡을 찬미했다. 아, 얼마 만에 야외에서 누리는 호사였던가.

 ◇호라만(Uraman Takht/Howraman) - 팔랑간(Palangan) 
호라만의 아침 풍경. 기슭에 드라마틱하게 쌓인(?) 마을. 산을 에둘러 차로도 오를 수 있다.
이곳은 친절한 이란에서도 ‘슈퍼’ 친절한 사람들이 산다. 마주치면 웃는 사람이 8할이다. 물론 알아듣진 못한다.
쿠르드족 여성은 대체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남성은 통 큰 배기팬츠(shalwar)와 터번(keffiyeh)을 착용한다. 어깨에 힘을 꽉 준 베스트는 양가죽으로 만들었다.
팔랑간은 강을 사이에 두고 두 마을이 마주 보는 형태다. 집들이 서로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듯한 마을.
팔랑간의 여성은 패셔니스타. 나이 불문하고 드레스의 패턴이 화려하거나 컬러가 강하다.
호라만과 팔랑간 사이는 대체로 달콤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란의 비주얼 최강자로 빠지지 않는 마을이 마슐레(Masouleh)다. 능선을 따라 연결된 집이 하늘로 층층이 계단을 만든다. 사진 한 장으로 보기엔 평화로우나 사실 몸살을 앓고 있다. 테헤란에서 약 365km 떨어진 곳으로 현지인과 관광객의 넘치는 사랑을 받는 까닭이다.

마슐레에 비해 세상과 단절된 채 누군가의 하늘을 땅으로 삼는 마을이 호라만과 팔랑간이다. 느낌은 다르다. 호라만이 독립적이면서 강한 남성성을 드러낸다면, 팔랑간엔 산수를 즐기는 유유자적함이 흐른다. 체감상 전자는 춥고, 후자는 덥다. 두 지역 모두 쿠르드족이 기거하는 쿠르디스탄에 속한다. ‘쿠르드족에게는 친구가 없고 산만 있다’는 말이 있다. 두 마을을 잇는 길은 푸르디푸르다. 사람도, 풍경도 비주얼 깡패다.

 ◇타브리즈(Tabriz) – 아하(Ahar) 
색을 입은 산. 완만해 보이지만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가파르다.

인스타그램에서 이란을 검색하면 천국에서나 존재할 법한 풍경 한 편에 멈칫한다. 무지개로 수 놓은 능선에 선 행운아의 뒷모습. 북서쪽을 달리다 보면 이런 능선을 간혹 만나는데, 타브리즈부터 아하 사이는 야외전시장이다. 자연도 꿈을 꿈꾸는 걸까. 다른 별에 착륙한 듯 좌우로 컬러 물결이다. 두어 번 도로를 유턴하면서, 부지런히 좌우 샛길로 빠졌다. 한번은 운동화로 산악 트레킹을 시도했는데, 역부족이었다. 암석이 바람에 가루처럼 부서지고, 딛고 오를 만한 디딤대가 부족하다. 만만해 보였는데 오를수록 내려갈 걱정이 커진다. 포토숍 기술이 제아무리 발달해도 세상에 사진보다 눈부신 곳은 많다. 자연의 신비로 가득 찬 이곳도 충분히 그 리스트에 오를 만하다.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번듯한 지명 하나 없는 능선이 자체로 눈부시다.
고속도로에서 산과 인접한 비포장도로로 접근하는 길을 찾기가 쉽진 않았다. 노력한 자에게 행운은 온다.
좀 더 색깔이 선명한 사진을 원한다면 낙조 시간대를 노리는 게 방법이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이프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