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로마의 상원의사당에서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현 정국 상황에 대해 연설중인 가운데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묵주에 입을 맞추고 있다. 로마=AP 연합뉴스

서유럽 최초 ‘극우와 포퓰리즘 간 결합’이라는 화려한 조명 속에서 출발한 이탈리아 연립정부가 결국 붕괴했다. 극우 정당인 ‘동맹’과 반(反)체제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 간 연정을 이끌어온 주세페 콘테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사임하며, 14개월에 걸친 두 정당의 연정도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극단의 성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데다 최근 치솟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연정이 아닌 ‘독주’를 택한 동맹 당수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의 ‘변심’이 연정 붕괴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극우와 포퓰리즘 간 협치’라는 이탈리아의 정치 실험이 실패로 귀결되며 극우 득세 양상이 뚜렷한 유럽 전체 정치 지형에도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콘테 총리는 이날 로마 상원 의사당에서 진행된 현 정국 관련 연설에서 “연정 위기로 정부 활동이 손상을 입게 됐다. 현 정부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라며 연정 해체를 공식화했다. 그는 “(살비니 부총리가) 자신의 이익과 당의 이익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의 결정은 이 나라에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라며 연정 해체의 책임을 살비니 부총리에게 돌렸다. 앞서 살비니 부총리는 8일 “수개월 간 내부 갈등 끝에 연대가 결렬됐다”며 연정 해체를 먼저 선언한 상태였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이탈리아 연정을 바라보는 유럽의 시선은 처음부터 불안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이탈리아 북부를 대표하는 극우 세력(동맹)과 서민층이 많은 남부의 지지를 받은 포퓰리즘 정당(오성운동) 간 결합이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양측은 감세 문제는 물론 사법개혁, 유럽연합(EU)과의 관계설정, 프랑스 리옹-토리노 간 고속철도(TAV) 건설 사업까지 거의 모든 정책에서 의견이 갈리며 충돌했다. 특히 북부에 혜택이 돌아가는 TAV사업을 두고 오성운동이 반기를 들며 양측 간 갈등은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 악화로 위기를 맞은 이탈리아를 협치로 이끌기에 두 당은 근본부터가 달랐던 셈이다.

다만 연정 해체의 결정타는 동맹을 이끄는 살비니 부총리가 날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두 정당이 갈라서게 된 것은 살비니의 과격한 파워 플레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3월 총선에서 17% 득표에 그쳤던 동맹은 강력한 반(反)난민 정책을 앞세워 올해 5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34%를 얻으며 단숨에 제1정당으로 올라섰다. 반면 오성운동은 17%에 그치며 중도좌파 민주당(PD)에 이어 제3정당으로 내려앉았다. 살비니 부총리로선 연정을 파괴하고 조기 총선을 통해 단독정부 구성을 노려볼만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실제 살비니 부총리는 8일 연정 해체를 선언하며 “앞으로 나아갈 길은 새로운 선거를 치르는 것”이라며 조기 총선에 승부수를 던져 놨다.

살비니 부총리의 승부수가 먹힐지 여부에 대한 전망은 분분하다. 오성운동과 민주당은 최근 반(反)살비니 전선을 형성하고 새로운 연정 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두 당이 연정 협상에 성공할 경우 조기 총선을 치를 필요 없이 곧바로 새로운 연정이 시작된다. 다만 두 당 역시 현격한 성향 차이로 갈등을 빚어왔다. 영국 BBC는 오성운동 당수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이 최근 “민주당과 협상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을 거론하며 “두 당의 오랜 불편한 관계를 극복한 연정 구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반면 NYT는 살비니 부총리 역시 단독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지지율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새로운 연정을 통해 살비니가 권좌에 앉지 못하게 될 여지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탈리아의 연정 실패는 유럽 전체 정치 지형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독일 사민당 등 기성 정당은 몰락한 반면 전통적 약체였던 극우 정당들이 이탈리아, 프랑스, 폴란드 등에서 일대 약진하며 유럽의 주요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음이 확인됐다. 따라서 연정을 깬 ‘극우’ 동맹이 이탈리아 단독 정부 수립에 성공할 경우 유럽의 우경화 움직임이 재차 동력을 얻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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