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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아도… 태권도 수어로 대등하게 겨룰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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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아도… 태권도 수어로 대등하게 겨룰 수 있죠”

입력
2019.08.21 17:37
수정
2019.08.21 20:4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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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태권도 수어 개발자 정봉규씨 인터뷰

‘청각장애인을 위한 태권도 수어’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정봉규씨가 지난 13일 열린 2018학년도 명지대 후기 학위 수여식에서 수어로 ‘국기원’을 표현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청각장애인을 위한 태권도 수어’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정봉규씨가 지난 13일 열린 2018학년도 명지대 후기 학위 수여식에서 수어로 ‘국기원’을 표현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초등학교 5학년 때 TV로 올림픽 태권도 시합을 보면서 처음 태권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대등한 위치에서 겨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접 상대를 만나 겨루기를 하면서 태권도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다.”

지난 13일 서울 서대문구 명지대 2018학년도 후기 학위 수여식에서 만난 정봉규(32)씨는 학사모를 쓴 채 태권도 예찬론을 펼쳤다. 국제청각장애인올림픽위원회(ICSD) 태권도 기술이사인 정씨는 선천적으로 소리를 듣지 모하는 청각장애 2급인데도 태권도로는 고수다. 12세때 태권도를 시작해 현재는 4단까지 단수를 쌓았다.

태권도 유단자인 정씨에게 이날 학위 수여식은 특별했다.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며 청각장애인들도 태권도를 배울 수 있게 관련 용어 318개 수어를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태권도 수어는 국내 최초이고, 이걸로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도 정씨가 처음이다. 그의 태권도 인생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다.

정씨가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 선택한 태권도였지만, 실제로 접한 태권도의 벽은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겨루기나 훈련을 할 때 심판의 입 모양만 보고 판단을 하기에는 듣지 못하는 한계가 명확했다. 대부분 코치나 심판의 구령 소리에 맞춰 진행하는데 이를 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제대로 소화할 수가 없었다. 그는 “청각장애인은 입 모양만 보고는 비장애인들과 대결할 수 없고, 전문 용어들을 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웠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들끼리만 있을 때도 겨루기나 훈련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겨루기’ ‘품새’ 같은 태권도 용어가 수어로는 정립돼 있지 않아 소통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가 태권도 수어 개발에 뛰어든 이유다.

하지만 수어를 개발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석사과정을 다니는 데 총 3년, 논문을 집필하는 데 꼬박 1년을 쏟아 부어야 했다. 이를 위해 만난 태권도 전문가만 30명이 훌쩍 넘는다. 정씨는 “수어 연구 아이디어가 금방 생각난건 아니다”라며 “여러 농아인 태권도 선수들과 태권도 전문가들, 국가대표 선수들을 만나며 고민하고 검토해 초안을 만들었다가 폐기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자신이 개발한 수어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단어로 ‘국기원’을 꼽았다. 그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 태권도를 관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관이고, 태권도의 정신이 담겨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정씨의 다음 꿈은 스포츠 행정가다. 특히 자신이 개발한 수어 체계가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태권도 수어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태권도가 더 많은 청각장애인들에게 다가갈 거라 믿는다.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영어 공부도 열심이다. 독학으로 영어를 익혀 이제는 읽고 쓰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는 “태권도 수어를 전 세계에 알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면서 “국제적으로 통용 될 수 있는 영어 태권도 수어 개발도 꼭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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