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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철 충남교육감 “글 모르는 어르신들은 모두 내 어머니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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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철 충남교육감 “글 모르는 어르신들은 모두 내 어머니 같아요”

입력
2020.01.05 14:00
수정
2020.01.05 19:1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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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철 충남도교육감이 '요리는 감이여' 발간 배경과 문해교육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준호 기자
김지철 충남도교육감이 '요리는 감이여' 발간 배경과 문해교육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준호 기자

“성인 문해교육(文解敎育)은 글을 몰라 평생 움츠린 삶을 살아온 어르신들을 더 넓은 세상으로 안내하는 길목입니다.”

충청도 할머니들의 인생과 평생의 손맛을 담은 요리책 ‘요리는 감이여’가 지난 연말 제60회 한국출판문화상 편집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나이 80이 다 되도록 글을 모르고 살다 뒤늦게 글 눈을 뜬 할머니 51명의 인생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책 속의 레시피가 화제가 됐다. 책을 읽은 문재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할머니들의 향학열을 응원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김지철(69) 충남교육감의 남다른 교육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자들은 충남교육청이 운영하는 문해교육과정 참가자 들이다.

재선의 김교육감은 평생 글을 모르고 살다 돌아가신 모친의 안타까운 처지와 똑같은 할머니들을 위해 민선교육감 초선 때부터 문해교육에 정성을 쏟았다.

김 교육감은 “격동의 시기에 태어난 우리 어머니들은 단지 여자라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며 “배운 사람들은 ‘아직도 글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라고 말하지만 많은 분들이 아직도 글을 몰라 위축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육감이 펼친 어르신을 위한 핵심사업은 ‘자서전 편찬 사업’이다.

이 사업은 자원봉사 청소년들이 글공부에 나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옮겨 쓰고 그림을 함께 그리는 공동작업 프로그램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세대를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사업의 첫 결실인 ‘요리는 감이여’는 시중의 흔한 요리책처럼 소금과 설탕을 몇 숟갈, 물은 몇 그램 같은 계량용어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할머니들이 수 십년 경험해온 ‘조금’ ‘넉넉하게’ ‘삼삼하게’ ‘조물 조물’이 조리법의 전부다.

그는 “책에는 글을 배울 수 없었던 사연부터 힘든 시절 자식을 키운 이야기까지 내용이 다양하다”며 “단순한 조리법 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시댁과 자녀, 남편 등의 이야기와 함께 해온 그들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녹아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육감은 또 “할머니들이 글을 모르게 된 원인은 경제적 빈곤, 유교문화, 아들중심의 가족주의 때문이며 이 과정에서 희생을 강요당했다”며 “이는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기본권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자서전 편찬사업은 교육청 산하 19개 직속기관과 도서관에서 운영 중이다. 등록학생 600여명 가운데 223명이 어르신이다.

충남도내 18세 이상의 비(非)문해, 저학력자는 ‘학력인정 문해교육기관’에서 일정 시간 수업을 이수하면 초ㆍ중등과정의 졸업자격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800여명의 어르신이 학력인정 과정을 밟았다. 책 발간에 참여한 할머니 중 11명이 이 과정을 거쳤다.

이와 함께 단순한 문해교육 수준을 넘는 ‘도란도란 다독다독 문학교실’ ‘길 위의 인문학’ ‘실버스토리텔러 자격증반’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참여한 어르신들은 스마트폰을 익혀 자녀, 손주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손쉽게 소통하고 스마트폰 기차표 예매와 간단한 동영상 제작도 가능해졌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다문화가정,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는 성과로 이어졌다.

김 교육감은 “이번 책은 학교, 도서관, 학생, 학부모, 충남을 기반을 둔 작가와 출판 편집자, 사서 등 다양한 계층의 집단지성을 보여준 사업”이라며 “충남지역의 모든 성인 비문해자들은 저희 어머니 같고, 그들의 어려움은 남일 같지가 않아 더욱 정성을 기울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또 “책 출간과 자서전편찬 사업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어린 학생들은 어르신들의 아픔까지 보듬어 주는 대견함을 보여줬다” 며 “이들의 색다른 경험은 마음속에 든든한 기둥으로 남을 것이며 성인문해교육이 가져온 성과”라고 말했다.

글ㆍ사진=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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