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S, DLF)이 주로 판매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에 대한 특별검사에 조만간 착수할 예정이다. 서울 시내 한 건물에 설치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ATM 기기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쪽박 투자’ 논란이 한창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은 희한한 상품이다. 기준으로 삼는 채권 금리가 -0.2% 아래로만 안 내려가면 연 4~5% 이자를 쳐 주겠다는 조건이다.

우리은행은 올해 초 "2000년 이후 10년 만기 독일 국채의 최저금리가 -0.2%보다 낮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홍보하며 1,266억원어치를 팔았다. 웬만해선 돈 잃을 일 없으니, 염려 말고 투자해서 4~5% 수익을 챙기라는 의미였다.

다만 4~5% 수익이란 당근의 반대 편엔, 가능성은 낮지만 가혹한 채찍이 있다. 만에 하나 국채 금리가 -0.2% 아래로 내려가면, -0.2%와 실제 금리의 차이에 200배만큼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0.2%와 대략 0.5%포인트 차이가 나면 손실이 100%(0.5%포인트X200)가 되는데, 만기를 한 달 앞둔 10년 만기 독일 국채의 금리가 요즘 -0.7% 언저리다.

-0.2%는 어떤 숫자일까.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건 불과 수년 전까지 교과서 속 이론에나 나오는 얘기였다. 채권을 발행해 돈을 빌리면 대가(이자)를 지불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너도 나도 채권을 사겠다고 달려들면 점점 그 대가가 낮아지다가 어느 순간엔 0 이하로 내려갈 수 있다는 이론이다. 채권 이자가 마이너스라는 건, 채권을 사는 사람에게 나중에 원금보다 적은 돈을 돌려주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0.2%도 아닌 -0.7%라니…. ‘해가 서쪽에서 뜨면‘ 같은 만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으니, 상품을 판 사람도 산 사람도 이 난리인 것이다.

요즘은 이런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는 10년 만기 독일 국채만이 아니다. 최근 독일 국채는 하루 만기부터 30년 만기까지 모든 금리가 마이너스를 넘나든다. 채권은 통상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은데, 안전하다고 소문난 스위스 국채는 50년물까지 마이너스가 됐다. 덴마크에선 10년 만기 고정금리가 -0.5%인 주택담보대출까지 나왔다. ‘원금보다 덜 갚아도 되니 돈을 빌려가세요’라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인 셈이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엔 엄밀히 말해 ‘원금 보장’은 없다. 손해 보고라도 돈을 빌려주는 세상인데 무슨 원금인가. 쥐꼬리 예금 금리에 견디다 못한 투자자들이 조금 더 높은 수익을 얻고자 ‘설마’ 싶은 조건을 감수한 결과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철석 같이 믿었던 상식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그런 시대다.

한편에선 무역의 근간도 흔들리고 있다. 2차 대전 이래 세계 주류 경제는 자유무역의 가치를 믿었다. 내가 잘 만드는 걸 내다 팔고, 못 만드는 걸 사서 쓰는 게 국가 간에도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니 WTO(세계무역기구)니 하는 건 모두 자유무역을 지키기 위한 기구들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정신이 득세하고 있다. 트럼프로 대표되는 ‘스트롱맨’들이 등장하고 나서부터다. 협력, 공동번영 등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경쟁, 생존우선 등이 더 앞선 가치로 떠올랐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로 정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국 중심 보호주의라는 새 무역 환경이 왔다. 자유무역을 했을 때 얻는 경제적 이익보다, 힘으로 ‘찍어 눌렀을 때’ 오는 정치적 이익이 더 크다면 언제든 통상을 써먹을 수 있다. 지금은 일본이지만 앞으로 중국, 미국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아무도 흔들지 못하는 나라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국민 모두의 바람이다. 하지만 지금 세계 경제는 그야말로 모든 게 흔들리는 시대다. 지각이 요동치는 지진 와중에, 행여 땅에 꽂힌 지팡이만 쳐다보며 흔들리지 않는다고 만족하진 않을지. “경제가 괜찮다”는 공허한 수사보다 냉철한 행동이 필요할 때다.

김용식 경제부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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