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체포됐다가 도주” 지명수배하며 언론에 알려
한일 갈등 속 이례적 조치
일본 경시청이 절도 혐의로 체포됐다가 도주한 재일 동포 용의자 김모(64) 씨에 대해 지명수배에 나섰다. 규정에 따른 조치이지만, 흉악범이 아닌 절도 용의자의 인적 사항을 도주 하루 만에 공개하고 지명수배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씨의 실명 등 신상과 얼굴은 20일자 일본 조간 신문을 통해서도 공개됐다. 최근 한일갈등 상황과 연관 지어 자칫 일본 내 ‘혐한(嫌韓)’ 감정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20일 교도(共同)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경시청은 전날 김씨의 인적 사항과 도주하는 모습 등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고 지명수배했다. NHK는 “김씨의 퇴원일은 당초 22일에서 19일로 앞당겨져 있었다”며 “골절 치료를 위해 잠시 병원에 이송돼 있던 김씨가 퇴원 후 다시 체포될 것이라고 생각해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지난 13일 도쿄(東京) 나카노(中野)구의 한 초밥 식당에서 계산대에 있던 현금 8만엔(약 90만6,000원)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후 달아나다가 계단에서 굴러 쇄골과 늑골을 다쳐 붙잡혔고, 도쿄경찰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던 중 18일 오전 6시 45분쯤 감시하고 있던 20대 경찰관을 따돌리고 도주했다.
당시 김씨는 병원 5층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신 뒤 화장실로 가면서 자신을 감시하는 경찰관에게 “라운지에 메모장을 놓고 왔으니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고, 경찰관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병원을 빠져나갔다. 그는 병원에선 휠체어를 이용했지만, 병원 보안카메라에는 병원 정문을 향해 달리면서 도망가는 모습이 찍혔다. 경시청은 “보행에 지장이 없었음에도 감시하는 경찰관을 안심시키지 위해 휠체어를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병원을 빠져나간 후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에 탑승해 JR 나카노역에 내렸으나 전철을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도주 당시 지갑과 휴대폰을 소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에서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피의자가 도주해 행방을 알 수 없을 경우엔 원칙적으로 지명수배를 내릴 수 있다. 일본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또 흉악범죄가 아니어도 국민 안전에 위협이 되거나 조기 검거 등을 위한 신고 협조가 필요하다는 경시청의 판단에 따라 지명수배를 결정할 수 있다. 김씨는 주거지 불명에다 무직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찰을 따돌리고 도주했다는 점에서 지명수배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시청 홈페이지에는 △살인 △강도 △사기 △절도 △기물파손 등 14개 범죄의 지명수배 목록이 공개돼 있다. 20일 현재 김씨를 포함해 절도 사건 10건의 지명수배 내용이 일본 경시청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이 최근 급속히 얼어붙고 있는 한일관계와 맞물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일민단 관계자는 “용의자 검거를 위한 것이지만 한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라며 “정부 간 관계와 이번 지명수배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극우인사들에 의해 한국인을 비하하는 소재로 활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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