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김복동 할머니(1926~2019)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간에 알린 건 1992년이다. 그 전까진 김 할머니의 어머니만 알았다. 1940년 중국으로 떠나 1948년 고향에 돌아온 김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남은 가족들은 일본 공장에 취직했다는 김 할머니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66세가 될 때까지 몰랐다.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 전 언니한테 의논하니 조카들도 있으니 제발 하지 말라고 했다. 언니는 그때부터 나에게 발길을 끊었다.” 김 할머니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가족도 외면했던 치욕을 애써 증언했지만 일본은 민간 주도로 ‘아시아평화기금’을 조성하는 등 국가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었고, 상처받은 김 할머니는 활동을 접고 부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가 싸우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며, 원하는 것은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법적 배상”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김복동 할머니가 거리로 나선 건 85세 때인 2009년이다. 주변과의 인연을 다 정리하고 고향인 부산 다대포에 석등 하나를 세운 후 서울로 와 피해자들과 함께 살았다. 수요시위, 국내외 평화의 소녀상 건립 행사, 전 세계 순회강연에 참석해 자신의 몸이 일본군 위안부 진실의 증거라고 말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김복동’은 할머니의 평생 중 이렇게 3개의 시간만을 담는다. 위안부 피해자의 시간(1940~1948), 피해자였음을 고백한 시간(1992~1998), 피해 당사자로 거리를 누빈 시간(2009~2019)이다. 영화는 세 번째 시간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세 번째 시간을 요약하면 “여러분은 여사로 듣겠지만 피해를 말할 때 나의 심정은 말로 못 합니다”는 그 고통스런 증언을 수천 번 반복해 그때까지 살아온 85년의 복잡다단했던 생을 오직 ‘위안부 피해자’의 생으로 단순화시키는 시간이다. 개인의 삶이 깎여 나간 이 단순화를 통해,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를 통해, 할머니의 말은 겨우 사람들에게 가 닿는다. “다시는 우리 같은 비극이 생겨서는 안 된다.” 김복동 이름 앞에 평화운동가, 여성인권운동가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취재 현장에서 종종 세 번째 시간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는 2015년 동료 교수 성폭력을 폭로했다 해고된 후 기나긴 투쟁 끝에 지난해 민형사상 부당해고를 판결 받고 최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국내 문화마케팅 1세대로 수십 년 활동한 그를 사회는 ‘성폭력 피해자’로만 기억하지만 남 교수는 전국미투생존자연대까지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국어교사 이용관씨는 2016년 방송사 조연출이었던 아들이 사망한 후 미디어노동전문가가 됐다. 열악한 방송 제작환경을 비판하며 유서를 쓰고 세상을 떠난 아들을 대신해 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만들었다. 평생을 교육 운동에 헌신한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의 이씨를 사람들은 ‘이한빛 PD 아버지’로 기억할 것이다.
소설가 김탁환이 세월호 희생자와 그 주변을 취재해 쓴 소설집 제목은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2017)다. 특정 사건이 역사에 살아남아 의미를 가질 때 그 사건을 맞은 인간의 의지(기록되겠다는!), 그 의지를 해석하는 주변의 태도가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는 걸 세 번째 시간을 맞은 이들은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니 아름답지 않을 수 있으랴.
여전히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더 큰 도덕성과 논리적 일관성과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타인을 몇 가지 기준으로 재단하는 사회에서 이들의 세 번째 시간을 생각한다. 개인의 삶이 거세된 채 피해자나 그 유족으로만 기억되는 자기희생을 통과해 자신의 증언이 사회운동으로 나아갈 때의 환희와 고독에 대해. ‘그 일’이 없던 때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고통에 대해.
우리는 미래의 아름다운 이들과 어떤 세 번째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이윤주 지역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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