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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가 자원ㆍ권력 나눠야 청년들이 설 자리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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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가 자원ㆍ권력 나눠야 청년들이 설 자리가 생깁니다”

입력
2019.08.20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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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세대’의 저자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12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불평등의 세대’의 저자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12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헬조선’에 힘겨워하는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가 건네는 위로는 폭력적이다. ‘조금만 버텨라. 언젠가는 좋아지지 않겠냐’며 희망 고문을 하거나 운이 없는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자동화 기계로 노동자가 대체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란 논리를 펴기도 한다.

이철승(48)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386세대 엘리트 집단이 점유한 ‘네트워크 위계’라는 독특한 한국형 위계구조에서 근본적 원인을 찾았다. 386 엘리트가 정치 경제 시민사회 권력을 장악했고, 여기에 끼지 못하는 청년 세대는 노동시장에서 탈락하거나, 비정규직 신세를 전전하고, 정치적 공간에서도 주변부에 머물며 세대 간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 교수는 최근 출간된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에서 총선(1996-2016)의 세대별 입후보자 및 당선자 분포와 국내 100대 기업의 세대별 임원진 분포(1998-2017) 등의 데이터로 386세대 엘리트 집단이 얼마나 ‘많이, 또 오래’ 우리 사회의 자원과 권력을 독점해 오고 있는지를 입증한다.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 교수는 미 시카고대 사회학과에서 종신교수로 일했지만, “한국의 데이터를 보며 연구하고 싶어” 2017년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은 근무연한에 따라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연공급제 문화가 강력한 나라다. 산업화 세대도 연공급제의 수혜자였다. 하지만 386세대 들어서 더 공고해지고 강력해졌다. 이 교수는 이를 386특유의 ‘세대 네트워크’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산업화 세대는 지연, 학연 등으로 네트워크가 갈렸지만, 386세대는 이념으로 이 모든 차이를 다 뛰어넘었다. 그는 “386 엘리트들은 민주화 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느 조직에 가서든 단합하고 조직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면서 “문제는 누릴 수 있는 파이의 크기가 제한돼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로 대기업의 정규직 노조를 들었다. 정해진 예산에서 인력을 운용하려는 기업가 입장에선 강력한 노조를 조직한 386세대의 정규직들과 싸워서 이기는 대신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거나, 하청이나 파견직 근로자, 비정규직으로 돌리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 정규직 노조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가 더욱 심화하는 배경이다.

그렇다고 조직에서 386 엘리트가 유능한가 따져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이 교수가 한국의 상장기업 중 상위 100개 기업의 출생 세대별 이사진 점유율에 따른 최근 5년 자본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1955년에서 1964년 출생 세대의 구성 비율이 증가할수록, 자본수익률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젊은 세대가 수뇌부에 더 많이 포진할수록, 기업의 성과지표는 올라갔다. 이 교수는 “386세대의 독점은 공정성과 형평성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산성과 효율성도 달성하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물론 386세대는 억울할 수 있다. “산업화 세대가 누렸던 경로를 따라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뭐가 문제냐”는 항변이 벌써부터 들려온다. 그러나 이 교수는 “경제ㆍ사회적으로 큰 부담을 짊어지게 될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이제는 양보하고 자제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가 386세대의 퇴장을 요구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는 전면적 세대 교체가 아니라 ‘세대 균형’을 이루자고 말한다. 파이를 독점하지 말고 나누자는 거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절약한 인건비로 기업들이 청년들을 고용하도록 사회적 협약을 맺는 것부터 출발이다. 급여를 직무에 따라 주는 직무급제 등을 통해 연공급제를 약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386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동시장 개혁은 보수정권이 하면 역풍이 불기 쉽다. “대통령 임금부터 1%씩 줄여나가면 장차관도 따를 수밖에 없고, 공무원 조직과 민간 기업에 차례로 퍼지기 시작할 겁니다. 세금을 더 거두지 않고 주어진 예산에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방법이죠. 한 명이 시작하면 모두가 움직일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으면 결국 아무도 동참하지 않을 겁니다.” ‘세대 공존’은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는 모범사례를 남기는 게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386세대를 압박하기 위해서 청년세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386과 다르다. 공모자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386세대에게 또 다른 자극이 되지 않을까요. 다 같이 좀 덜 받고, 덜 일하고, 더 많이 고용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386세대의 희생을 당부해 봅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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