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플렉스 국제갤러리 부산점서 단독전, 10월 27일까지 
덴마크의 3인조 작가그룹 수퍼플렉스의 전시회가 다음달 10월 27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린다. 오른쪽 벽면에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도산한 은행들의 이름이, 왼쪽에는 이들 은행의 로고를 회화로 만든 작품이 걸려있다. 가운데 바닥에 놓인 파란색 설치 작품은 비트코인의 가치 변동을 형상화한 것이다. 국제갤러리 제공

한쪽 벽면에 검은 패널을 배경으로 은행의 이름들과 날짜들이 나열돼 있다. ‘WESTERN NATIONAL BANK, acquired by WASHINGTON FEDERAL, December 16, 2011’ 같은 식이다. ‘2011년 12월 16일 워싱턴 연방(은행)에 인수된 웨스턴 내셔널 은행’을 뜻한다. 적힌 이름들은 2008년 전 세계를 덮친 금융 위기로 파산해, 다른 곳에 인수합병된 은행들이다. 옛 토마토저축은행 같은 한국 금융기관도 눈에 띈다.

덴마크의 3인 작가 그룹 수퍼플렉스(SUPERFLEX)가 개인전 ‘우리도 꿈속에서는 계획이 있다(In our dreams we have a plan)’에 선보인 설치미술 ‘파산한 은행들(Bankrupt Banks)’이다. 한쪽 벽면엔 2008년 7월 14일을 시작으로 파산을 선언하고 다른 금융기관이나 정부에 흡수된 은행들과 인수 날짜를, 다른 한쪽에는 그 은행들의 로고를 회화로 만들어 걸었다. 수퍼플렉스는 1993년 야콥 펭거,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 라스무스 닐슨이 결성했다.

이들은 은행의 이름과 로고에서 어떤 의미를 건져 올린 걸까. 14일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린 전시 개막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펭거와 크리스티안센은 “파산한 은행들, 그리고 이들을 인수해 몸집을 불려서 영향력을 키우는 은행들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거대한 세계 경제구조가 돌아가는 과정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파산한 은행들의 이름이 ‘선샤인(Sunshine)’처럼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긍정적인 의미인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도 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은행의 로고에서 이름을 떼어내고 회화로 만든 건 이미지의 추락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전시를 기획한 국제갤러리는 “한때 권위와 자신감의 상징으로 고안된 로고들이 은행의 파산 이후엔 실패한 권력구조의 초상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퍼플렉스의 멤버 중 야콥 펭거(오른쪽)와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 국제갤러리제공

전시장 바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파란 구조물을 보고 꺾은 선 그래프를 연상했다면 빙고. 이것은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가치 변동(18개월간)을 나타낸 작품 ‘나와 연결해(Connect with me)’다. 수퍼플렉스는 “비트코인을 자유경제의 유토피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실패”라며 “작품 ‘파산한 은행들’이 금융기관이 책임지는 경제를 표현했다면, ‘나와 연결해’는 개인이 책임지는 경제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프리비어(FREE BEER)’라는 독특한 작품도 있다. ‘free’는 무료가 아닌 자유의 의미다. 그러니 프리비어는 공유 맥주이기도 하다. 전시장이 있는 복합문화공간 내의 수제 맥줏집 프라하993과 손잡고 만들었다. 오픈소스의 개념을 맥주에 적용한 작품이다. 레시피를 CCL(저작물 이용 표시) 하에 그대로 따르거나 변형해 자신만의 프리비어를 만들 수 있다. 그저 마실 수도, 이를 팔아 돈을 벌 수도 있다. 수퍼플렉스는 “더 많은 사람들이 협업하면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며 “프리비어는 저작권을 중시하는 구(舊)경제와 달리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는 신(新)경제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외에 향후 기후 변화로 상승할 해수면의 높이를 표현한 조각 작품도 선보인다.

이들은 왜 사회 문제에 예술가의 눈을 들이대는 걸까. “예술은 사회의 한 부분이면서도 중요한 도구(tool)라고 생각해요. 문화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양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 있죠. 인간이 다른 종과 다른 점은, 모르는 상대와도 내러티브(서사)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전시는 10월 27일까지 열린다.

오픈소스 개념을 맥주에 적용해 만든 수퍼플렉스의 ‘프리비어’. 진한 갈색에 시큼씁쓸한 맛이 독특하다. 국제갤러리 제공

부산=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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