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해방군 “메뚜기는 가을되면 사라진다”
무력개입 임박한 듯한 메시지
‘제2의 톈안먼(天安門) 사태’냐 ‘대화를 향한 국면 전환’이냐.
지난 6월 9일 첫 범죄자 인도법(송환법) 반대 집회 이후 70일간 이어진 홍콩 시위 사태가 18일 최대 분수령을 맞는다. 중국 정부는 무장경찰 수천 명을 홍콩 접경 지역에 대기시킨 뒤 ‘무력 개입’ 명분을 축적하는 가운데 18일 예정된 시위에도 수십만 명의 홍콩 시민이 거리로 나설 전망이다. 유혈사태 없이 평화 시위로 끝날 경우 시위대와 홍콩 당국의 협상 분위기가 마련될 여지가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당장 홍콩 인근 선전(深圳)에 대기 중인 중국 무장 경찰 투입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18일 시위는 무엇보다 이달 초 개막한 베이다이허(北戴河)회의 종료 뒤 처음 열리는 시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와 관련, 중국 공산당 인민일보는 16일 서열 3위인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전날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전인대 상무위를 주재했다고 밝혀 베이다이허 회의가 종료됐음을 시사했다. 매년 7월 말이나 8월 초 열리는 베이다이허 회의는 중국의 전ㆍ현직 수뇌부들이 모여 대내외 중대 현안을 협의하는 자리로 이번 회의에선 홍콩 시위에 대한 본국 차원의 대응 방안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이 이번 회의를 거치며 홍콩 시위대에 대한 전면적인 무력 진압을 결정했을 것이란 관측은 여전히 많지 않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데다 미국의 우려 역시 커지고 있는 흐름에서 중국 지도부로서도 이 같은 국제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에서다.
그러나 중국 기관ㆍ매체들의 분위기는 베이다이허 회의를 전후해 오히려 험악해지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만약 홍콩 시위를 진압하더라도 30년 전 사건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그때보다 훨씬 강하고 성숙했으며 복잡한 상황을 관리할 능력도 한층 향상됐다”고 밝혔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탱크 부대를 동원해 진압, 대규모 유혈 참사가 벌어진 1989년 톈안먼 사건이 재발하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지만, 동시에 무력으로 진압하되 유혈 참사는 최소화할 것이란 의도가 읽힌다.
중국군은 시위대를 ‘가을 메뚜기’에 비유하며 무력 진압 가능성을 시사했다. 인민해방군 5대 전구(戰區) 중 하나인 동부 전구 육군은 14일 자체 웨이신 계정인 인민전선을 통해 “활동 기간이 90일인 메뚜기는 가을이 되면 종적을 감춘다”고 전했다. 6월 9일 첫 집회로부터 90일(9월 9일)이 되기 전에 시위대가 진압될 것이란 뜻으로 무력 개입이 임박했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70주년 건국절을 맞는 10월 1일 이전에 어떻게 해서든 시위를 정리해야 하는 중국 지도부의 의중이 담긴 표현이기도 하다.
홍콩 사태가 이미 대만과 마카오 민심에 영향을 주고 있는 점 역시 중국 당국의 강경 대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는 지적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6일 홍콩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마카오 청년층을 소개한 기사를 내고 “홍콩 사태로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마카오에서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전날 민주진보당 여성 좌담회에서 “홍콩 사태와 관련해 대만의 자유가 후손들에게 전해질 수 있을지 많은 대만인이 우려하고 있다”며 “내가 있는 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직원들이 시위에 가담해 중국 정부의 압박을 받았던 홍콩 최대 항공사 캐세이퍼시픽은 이날 루퍼트 호그 최고경영자(CEO)가 전격 사임했다
중국이 무력 개입을 실행에 옮긴다면 18일 시위대의 과격 행위를 명분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홍콩 시위를 이끄는 민간인권진선은 평화 시위를 예고하고 있지만, 홍콩 당국은 빅토리아 공원 내에서의 집회만 허용하고 다른 지역에서의 시위대 행진을 불허했다. 이에 따라 이날 홍콩 시내 곳곳에서 게릴라성 시위가 이뤄질 것으로 보여 경찰과 시위대의 물리적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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