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文대통령 유화 시그널 반기면서 징용 관련 “입장 변화없어” 선 그어
아베 총리 휴가 당분간 확전 자제… 내주 베이징 한중일 외교 회담 주목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 제외를 결정한 후 한국에 대한 추가 공세를 자제하고, 우리 정부는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를 통해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한일간 무역전쟁의 변곡점이 다가왔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연장 결정(24일 기한)을 내리고, 일본이 28일로 다가온 화이트리스트 제외 시행 후에도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하지 않는다면 양국의 외교적 대화 국면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유화 시그널을 전해 받은 일본 정부는 당장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상황을 낙관하기는 섣부른 것으로 보인다.
16일 일본 정부는 한일갈등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일본에 대한 강경 발언을 자제했다는 점에서 긍정 평가하는 의견이 있지만, 갈등의 핵심인 강제동원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속단하지 않고 한국 대응을 주시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이날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일본의 입장은 일관된 것으로 징용문제의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일 뿐”이라며 “공은 한국 측 코트에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도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라고 전했다.
세르비아를 방문한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장관은 15일(현지시간) “문 대통령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판결을 둘러싼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일본 측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로 일본에 공을 넘긴 것이라는 한국 측 시각과 거리가 있다. 이 발언을 접한 외교부는 16일 장관급 인사인 고노 외무상이 국가 원수인 문재인 대통령을 거론해 조치를 요구하는 부적절한 발언을 한 데 대해 매우 유감이라는 뜻을 외교 채널을 통해 일본 측에 전달했다.
그럼에도 양국은 당분간 확전을 자제하며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20~22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조율하고 있고, 9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과 뉴욕 유엔총회 등 국제행사들을 계기로 관계 개선의 출구를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질 전망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이날 오전 태풍 관련 관계장관 회의를 마친 뒤 1주일 간 휴가에 돌입, 당분간 한국을 자극하는 언급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방위장관은 경축사와 관련해 “한 시기 발언과 비교하면 상당히 온건하다”라며 “(한국과)연대할 게 있으면 확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양국 사정에 정통한 도쿄(東京)의 외교소식통은 “일본은 지난 2일 화이트리스트 제외 각의 결정 이후 대항조치를 추가적으로 취하지 않았고 한국도 광복절 축사에서 유화적인 입장을 밝힌 만큼 지금은 양국이 물밑대화를 진행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당장 24일이 결정 기한인 지소미아 연장 여부와 28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시행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만약 지소미아 연장 결정이 이뤄지고 화이트리스트 제외 이후 개별허가 품목 지정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대화의 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러나 지소미아 연장이 불발될 경우, 일본 측의 개별허가 품목 추가 지정 등 양국 간 보복성 맞대응이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지소미아 연장과 관련해 “결정된 바가 없다. 국익 차원에서 결정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결국 일련의 대화 과정에서 양측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좁힐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이에 대해 “12월로 조정 중인 한중일 정상회의에 맞춰 한일 정상회담을 갖고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사태의 타개는 쉽지 않다는 신중한 자세도 무너뜨리지 않고 있다”고 전망했다. 한일 양국이 상대에 대한 공세를 자제하더라도 이르면 올 연말이나 내년 초로 전망되는 일본 기업의 압류자산에 대한 매각이 현실화할 경우엔 대항조치를 취하겠다는 일본 측 입장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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