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대법원이 신체를 본떠 만든 성기구 ‘리얼돌’의 수입을 허가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자, 이 문제를 두고 한국 사회에 뜨거운 논란이 불붙었다. 특히 여성 사이에서 강한 반발이 터져 나오며 리얼돌의 수입과 판매를 금지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26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리얼돌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나, 2심 재판부는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하며, 그것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이 옳다고 보고 원심을 확정했다. 1ㆍ2심의 상반되는 판단은 리얼돌 문제에 대한 두 시선을 대변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므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사적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범죄의 위협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공포를 무시할 수 없음은 물론이지만, 리얼돌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어떤 실질적인 피해를 발생시킨다고 볼 수는 없다. 리얼돌이 강간 문화의 전파에 일조한다는 주장 또한 겉으로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나 근거는 불분명하다. 따라서 실제로 리얼돌을 금지하게 된다면 그 근거는 건전한 성 풍속,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추상적인 가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위험과 추상적인 가치를 이유로 국가의 검열 권력을 확대하는 건 자연히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그리고 그 칼은 보통, 오히려 약자를 향하기 마련이다. 당장 건전한 풍속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국가가 소수자들의 사생활에 개입하여 그들을 박해해온 사례가 얼마나 많았는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마치 사회상규의 파탄을 본 듯 질색을 하며 반응한다. 실제 인물이나 아동을 모델로 한 리얼돌도 나오는 판인데 리얼돌 유통을 어떻게 변호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리얼돌을 금지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아동을 모델로 한 리얼돌은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아동ㆍ청소년 음란물과 마찬가지로 접근할 수 있다. 아동과의 성관계는 그 자체로 심각한 불법행위로서, 성인과의 관계와는 달리 접근해 처벌할 당위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리얼돌 역시 개인의 인격권, 퍼블리시티권, 성적 자기 결정권, 개인의 존엄성 등 다양한 차원에서 문제가 되며,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충분하다. 만일 누군가가 사적 영역 밖에서 리얼돌을 사용한다면 경우에 따라 성범죄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건 회색의 자리다. 많은 사회 문제는 복수의 가치가 충돌하며, 개중 많은 경우는 그 가치 간에 우열을 나누기도 어렵다. 사안별, 단계별로 세심하고 실증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사회 문제를 흑백이 뚜렷이 갈리는 일종의 싸움으로 간주하고, 철저히 한 가지 정의에 부합한 결정만을 요구하며 다른 의견은 머리가 ‘빻은’ 이들의 것이라 공격한다. 혹 당신이 정상적인 성관계를 맺지 못하기에 리얼돌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냐는 혐의를 덧씌우기도 하는데, 이건 채식을 한다니 당신은 채소냐고 묻는 질문만큼이나 당황스럽다.
우리는 여성의 실존적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심과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선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운동의 역할은 중요하다. 다만 운동의 메시지가 도그마가 되어버리면, 충돌하는 가치는 무시당하고 또 다른 갈등과 부작용이 튀어나온다. 거기에는 회색의 자리가 필요하다. 불쾌하거나 부도덕하다면 국가가 금지해야 하는가? 국가의 권력은, 특히 형사 처분 등 강력한 강제력을 띠는 권력은 개인의 사생활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할 수 있는가? 리얼돌은 대중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것이며, 가상현실 등 다른 기술과 비교할 때 어떤 위험성이 있다 할 수 있는가? 그 자리에는 무척 많은 질문들이 있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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