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전문가 긴급진단] 김성태 KDI 경제전망실장 
 일본은 한국에 의존하는 소재 없어… 기울어진 운동장 고칠 전략 필요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 KDI 제공

“통상 환경이 이미 변했는데, 우리는 큰 틀을 보지 못하고 일본에 매몰돼 있습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 16일 세종 KDI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근의 한일 통상 갈등과 관련해 오히려 “일본만 바라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치,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통상까지 끌어들이는 ‘자국 중심 보호주의’가 이미 세계 경제의 한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장 일본과의 갈등을 해결하더라도 언제든 유사한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 같은 환경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선 “우리 제품을 사지 않을 수 없게 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실장은 세계은행(WB)에서 선임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하고 현재 국책연구기관 KDI에서 경제동향 연구를 총괄하는 거시경제 전문가다.

-한일 갈등이 해소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근시안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지 일본과의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자유무역협정(FTA), 신자유주의 등 기존 패러다임이 끝나고 자국 중심 보호주의라는 새로운 통상 환경이 왔다. 여기선 경제적인 이유, 혹은 그 밖의 이유로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통상을 이용할 수 있다. 자유무역을 했을 때 얻는 경제적 이익보다, 통상으로 ‘찍어 눌렀을 때’ 오는 정치적 이익이 더 크다면 경제 문제를 언제든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일본이지만 앞으로 중국, 미국도 위협이 될 수 있다.”

-세계적인 흐름이란 말인가.

“그렇다. 여기에 최종재가 아닌 중간재를 통상 압박에 이용하는 것도 최근 패러다임이다. 중간재는 최종재에 비해 대체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이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돌연 중단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통상 환경이 한참 전부터 바뀌었는데 우리는 인식하지 못했다. 일본에만 집중하기보다 새 패러다임에 맞는 전략을 짜고,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산업경쟁력을 높일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정부는 소재ㆍ부품 분야 국산화 전략을 내놨다.

“7월 초까지만 해도 소재ㆍ부품 얘기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그간 우리 정부가 강조해온 것은 제조업 르네상스,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 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다. 소재ㆍ부품 분야만 해결하면 모두 잘 될 것처럼 얘기한다. 거시 정책이 없는 졸속이다. 특히 경제 컨트롤타워도 보이지 않는다. 다들 뉴스에 나와서 한 마디씩 할 뿐이다. 확실한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더 큰 틀에서 기존에 해오던 제조업 르네상스, 혁신 선도사업에 소재ㆍ부품을 어떻게 접목시키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새 통상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은 일본이 핵심 소재를 한국에 수출하는 반면, 한국은 그런 게 없기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형국이다. 우리 것에 의존하게 만들어 운동장을 평평하게 해야 한다. 다만 소재ㆍ부품 100% 국산화는 가능하지 않다. 기술을 우리가 갖는다 해도 어차피 자원을 수입해야 한다. 핵심 부분은 우리가 만들고 나머지는 다른 나라에서 만들도록 나눠주면서 우리 제품의 경쟁력을 살리고 팔리도록 해야 한다. 우리도 언제든 때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상대가 어지간해선 통상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한일 갈등으로 올해 성장률 1%대 전망도 나온다.

“2%대는 유지할 것으로 본다. 좋지 않은 뉴스들이 많을 뿐이다. 특히 일본 수출규제는 지표로 확인된 것이 없어 속단하기 어렵다. 올해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면 내년 반등 여지도 크다. 사실 성장률이 얼마나 되느냐는 지엽적인 문제다. 기업들이 위험을 피하려고 하면서 더 증가한 경기 하방 위험이 더 큰 문제다.”

-하방 위험이라면.

“갈림길에 놓인 상황으로 보면 된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직전까지 생산라인을 만들고, 공장을 지으려 했던 국내 기업 입장에선 당장 투자를 못하게 됐다. 이런 경우 바로 피해를 확인하긴 어렵다. 정부 대응도 어떤 결과를 낼지 모른다. 20~30년 후 ‘그 때 일본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가 망가졌다’라는 후회로 나타날 수도, 반대로 ‘일본을 계기로 우리 경제가 한 계단 도약했다’고 인식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당장 일본과의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아예 통상을 단절할 생각이 아니라면, 명분이 필요하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폐기도 명분을 쌓는데 도움이 된다면 고려해 볼만 하다. 그러나 반대로 명분을 없애고 책잡힐 일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나더라도, 대의명분을 만들어 간극을 줄여나가는 것이 정치 아닌가.”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김성태 실장은

서강대와 미 워싱턴대에서 경제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거시경제 전문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경제동향전망 팀장, 거시 및 금융 경제연구 부장을 거쳐 2017년부터 지난 5월까지 세계은행 선임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했다. 귀국 후 KDI에서 경제 상황을 총괄하는 경제전망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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