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국방예산은 (올해 보다) 7.6% 정도 오를 것이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언급한 이 발언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 고위 인사가 아직 유동적인 내년 예산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공개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심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 등 민감한 문제들로 최종 확정까지 고심을 거듭해야 할 예산 정책을 미리 공개한 것 자체가 무책임하고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정부 등에 따르면, 김 차장은 지난 12일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한 정부의 대응을 설명했다. 김 차장은 “우리가 지금 정찰용 인공위성이 하나도 없다”며 “중국은 30개가 넘고 일본은 8개가 있는데(중략), 안보 분야에서도 외부 의존도가 너무 높으면 부품ㆍ소재 같은 문제가 안 생긴다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문제의 발언은 이후 나왔다. 그는 “우리가 빨리 정찰용 인공위성을 25개까지 만들어 쏴 올려야 된다.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 질 수가 있고, 그래서 우리가 계속 노력을 해야 된다”며 “참고로 금년 국방예산은 작년 대비 8.2%가 늘었고 2020년에는 아마 7.6% 정도가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내년도 예산이 여전히 편성 중이라는 데 있다. 김 차장이 7.6%를 언급한 당일에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산편성 작업은 상중하로 보면 (막바지인) 하 단계 정도지만 내년도 재정규모 증가율을 어떻게 할지는 다음주(8월 넷째주) 초 정도에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 당국조차 아직 조율 중이라는 예산 규모를 김 차장은 소수점 뒷자리까지 콕 집어 밝힌 셈이다.
예산안은 편성 과정에서 청와대와 예산 당국간 긴밀히 협의를 거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차장의 ‘7.6%’ 발언은 말실수가 아닐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정부 예산안은 ‘기재부의 편성→당ㆍ정 협의→청와대(대통령) 보고’ 과정을 거쳐 최종 확정ㆍ발표되고 국회에 제출된다. 발표도 부총리가 전체 예산을, 부처 예산은 각 부처 장관 명의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예산 편성과 무관한 차관급인 김 차장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더욱이 일본 수출규제, 한미 방위비분담금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우리 대응책을 미리 상대방에 드러냈다는 점도 무책임하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 차장의 위치라면 ‘안보 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올릴 필요가 있고 그런 노력 중인 것으로 안다’ 정도로 말했어야 했다”며 “설령 7.6% 인상이 맞다 하더라도 대통령 보고도 안 된 사항을 밝히는 것은 ‘내가 이정도 안다’는 자기 과시밖에 안 된다”고 꼬집었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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