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 국립기록보존소에서 아뜩히 먼 할아버지 사진이 담긴 신분증을 발견한 순간, 그 자리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더군요. 그 동안 우리 가족의 뿌리를 알지 못했고, 찾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섞인 감정이었습니다.”
지난달 18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시내에서 만난 가브리엘 유(33·한국 이름 유현수)씨는 가방에서 코팅한 옛 사진 몇 장을 꺼내 들었다. 할머니의 외조부, 즉 그의 진외증외고조부 이명원(1869~1952) 선생이 1930년대 멕시코에서 사용하던 신분증이다. 깡마른 얼굴에 콧수염을 기르고 양복을 입은 모습으로. 태어난 곳은 한국(Corea), 국적은 일본(Japonesa)으로 기재돼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비통한 운명이 고국에서 1만2,000여km 떨어진 땅, 멕시코의 이민청이 발급한 신분증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이명원 선생은 1905년 고향 충주를 떠나 용설란의 일종인 에네켄 작물 농장 계약 노동자로 멕시코 유카탄 지역 메리다에 왔다. 멕시코 한인들이 처음으로 뿌리내린 메리다에서 1909년 5월 9일 대한인 국민회 지부가 결성될 때 참여했던 창립회원 305명 중 1명이기도 하다. 그는 메리다 지부를 통해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공로 등으로 2015년 건국포장을 수여 받았다.
이런 활동을 수 십 년간 유씨 가족은 전혀 몰랐다. “사실 ‘알프레도 리’라는 멕시코 이름만 알뿐 한국 이름도 몰랐고, 독립운동에 조금 관여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가난했던 가족들은 생계에 집중하느라 한인회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독립운동가 할아버지 이야기는 더 이상 아래로 전해지지 않았죠.” 유씨의 말이다.
유씨가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인식했던 것은 할머니(로사리오 유리·한국이름 유순애)를 통해서였다. 이민 3세로 멕시코에서 태어났던 할머니는 자신의 어머니 돌로레스 이문(이명원 선생의 딸)에게 만두와 같은 한국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 한국 사투리를 들으며 자랐다. 유씨는 “할머니가 기억하시던 ‘밥 묵었나’ 같은 사투리가 바로 부산이 고향이었던 고조할머니(문숙이)가 늘 쓰시던 말이었다”고 말했다.
멕시코 한인회에서 일했던 유씨는 재외동포재단을 통해 한국을 방문하고, 경희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해 보훈처에서 진행하는 중미지역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사업을 접한 후 자신의 뿌리 찾기에 나섰다. 유씨는 “항상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말하던 증조할머니가 결국 한국을 가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점이 항상 마음에 남아있었다”며 “조상의 흔적을 찾던 중 멕시코 국립자치대학(UNAM)의 알프레도 로메로 교수로부터 국립기록보존소에서 한국계 신분증을 본 것 같다는 말에 바로 국립기록보존소를 찾았다”고 말했다. 사서의 도움을 받아 방대한 고문서 더미를 헤치다가 찾은 게 바로 일본 국적의 이명원 선생 신분증. ‘알프레도 리’로만 알았던 할아버지의 한국 이름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는 고조부이자 2016년 대통령표창을 받은 유순명(1881~1938) 선생의 신분증도 찾을 수 있었다. 유순명 선생도 이명원 선생과 함께 1905년 멕시코행 배를 탔던 것으로 추정된다.
멕시코 한인 5세인 유씨는 어렵게 찾은 신분증 등을 근거로 지난 4월 이명원의 고손자로 인정받아 훈장을 전수받았다. 멕시코에서 독립유공자 서훈이 후손에게 전수된 것은 김익주(건국훈장 애족장) 황보영주(건국훈장 애족장)에 이어 세번째다. 일제강점기 멕시코에 정착한 한인 중 독립운동 자금 지원 등의 공로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사람은 50명. 이 가운데 47명은 나라가 그 후손을 찾지 못해 훈장을 전수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쿠바에서도 독립유공자 22명 가운데 9명만 그 후손을 찾아 전수했다.
지난 4월 유씨는 멕시코의 한인 이민을 연구하는 연구자들과 한국이민연구위원회(Comite de Investigadores de la Migracion Coreana·CIMC)를 결성했다. 멕시코의 한인 역사에 대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해 후손들이 뿌리를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유씨는 “국립기록보존소에서 고조할아버지 가족의 신분증을 찾으면서 비슷한 한인들의 신분증 수 십장을 찾았다”며 “이를 바탕으로 그 후손들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멕시코시티=글·사진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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