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오랜 기간에 걸쳐 평화로운 세월을 생각하며, 과거를 돌아보며, 깊은 반성 위에서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난 5월 즉위한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15일 레이와(令和) 시대 들어 처음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을 언급했다. 그는 이어 “전쟁터에서 숨진 분들에 대해 모든 국민들과 함께 마음으로부터 추도의 뜻을 표하며 세계 평화와 일본의 발전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올해 추도식은 레이와 시대 첫 추도식인데다 ‘전후 세대’ 첫 일왕인 그가 ‘오고토바(お言葉ㆍ소감)’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에 이목이 집중됐다. 나루히토 일왕이 ‘깊은 반성’이란 언급은 그간 아버지인 아키히토(明仁) 상왕이 전쟁 책임을 외면해 온 정치인들과 달리 추도사를 통해 반성의 뜻을 밝혀온 ‘평화주의 노선’을 계승한 것이다. 아키히토 상왕은 패전(종전) 70주년이었던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깊은 반성’이란 표현을 사용해 왔다.
나루히토 일왕은 전쟁을 겪지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양친으로부터 전시 중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왕세자 시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 미국과의 격전을 벌인 오키나와(沖縄) 등을 방문했다. 그는 2015년 기자회견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 오키나와를 방문, 많은 분들의 고난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날도 전쟁에 대한 반성이나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2차 집권 이후 2013년부터 이날까지 7년째 역대 총리들이 추도사를 통해 언급해 온 “아시아 제국의 국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긴 데 대해 깊이 반성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일본)는 전후 일관되게 평화를 존중하는 나라로서 한결 같은 길을 걸어왔다”며 “역사의 교훈을 깊이 마음에 새겨 세계평화와 번영에 힘써 왔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맹세는 쇼와(昭和ㆍ히로히토 일왕 당시 연호), 헤이세이(平成ㆍ아키히토 일왕 당시 연호) 그리고 레이와 시대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평화롭고 희망이 넘치는 새 시대를 만들기 위해, 세계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후 역대 총리들이 사용한 ‘부전(不戰ㆍ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의 맹세’라는 표현 대신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맹세’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 내일을 살아가는 세대를 위해 국가의 미래를 열어 나가겠다”고 기념사를 마무리했다.
일본 정부는 매년 8월 15일을 ‘종전(패전) 기념일’로 지정, 전국전몰자추도식을 열고 태평양전쟁 당시 사망한 국민들을 추모하고 있다.
한편 아베 총리는 이날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靖国) 신사에 ‘다마구시(玉串ㆍ물푸레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라는 공물을 보냈다. 아베 총리가 패전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보낸 것은 2차 집권 이후 7년 연속이다. 그는 2013년 12월 야스쿠니신사를 전격 참배,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거센 반발 이후 신사를 참배하지 않고 이날과 춘ㆍ추계예대제에 공물을 보내고 있다.
여야를 초월해 극우 성향의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50명은 이날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이들은 매년 종전일과 춘·추계 예대제 때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이날은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일본 외무 부(副)대신, 기우치 미노루(城內實) 환경부대신 등 차관급 정부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밖에 아베 총리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과 차세대 총리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중의원 의원도 개별적으로 참배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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