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와 FTA 조건으로 요구
“앞으로는 ‘피자 위에 모차렐라 올려드릴까요?’라는 말 대신 ‘토마토를 뿌린 구운 밀가루 반죽 위에 우유로 만든 하얗고 탱글한 치즈 올려드릴까요?’라고 물어보게 될 거다.” (지난 2월 피오나 심슨 호주 전국농민연합(NFF) 회장의 호주 ‘파이낸셜리뷰’ 기고문 중)
호주의 식료품 업체들이 자사 제품명을 대거 바꿔야 할 위기에 처했다. 호주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진행 중인 유럽연합(EU)이 식료품의 원조 지역이 포함됐거나, 지역 고유성이 담긴 제품명 수백 개를 더 이상 쓰지 말라는 협상 조건을 내민 탓이다. 이 명단에는 고르곤졸라(이탈리아), 페타(그리스), 그뤼예르(스위스) 등 유럽 태생 치즈들도 다수 포함됐다.
13일(현지시간) 호주 정부는 EU 측에서 FTA 체결을 대가로 사용 중단을 요청한 식료품 명단 408개를 공개했다고 전했다. 호주가 이 요청에 응할 경우, 예를 들어 자사 제품에 ‘페타’라는 이름을 붙여온 치즈 회사들은 ‘호주 페타’ 등으로 제품명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CNN은 설명했다. 실제 정통 페타 치즈와 동일한 방법으로 만든 제품이라도, EU 법에 따라 요구되는 ‘지리적 영역’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호주는 이미 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발포성 와인인 ‘샴페인’ 등의 이름은 안 쓰기로 합의했다.
EU는 원조 지역이 있는 식료품의 제조업체들을 보호하고, 품질을 보증할 목적으로 ‘지리적 표시(GI)’를 중요한 지식재산권의 한 형태로 관리해 보호 중이다. EU가 GI에 따라 보호를 요청한 명단에는 치즈 외에도 아이리시 크림(아일랜드), 스카치위스키(스코틀랜드), 그라파(이탈리아) 등 각종 주류 등이 이름을 올렸다.
제품명 사용에 제약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호주 농민과 기업체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CNN에 따르면 심슨 NFF 회장은 올해 초 현지 언론에 “소비자들은 ‘페타’처럼 익숙한 제품명을 찾는다”면서 “이름 변경 요건은 호주의 식료품 회사들이 구축한 시장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의 우려가 커지자 사이먼 버밍엄 호주 통상관광투자부 장관은 이날 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EU를 상대로) 매우 강경한 협상”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밝히면서 “(FTA가) 호주의 이익이 될 때만 체결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버밍엄 장관은 농민과 기업들을 대상으로 직접 고충을 듣고자 한다며 공청회를 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U는 이미 호주의 두 번째로 큰 교역국이자 세 번째로 큰 수출국이나, 호주 당국은 이번 FTA를 통해 자국 수출업체들이 인구 5억명의 EU 시장에 보다 더 유리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호주는 지난해부터 EU와 FTA 협상을 시작해 이미 네 차례 회담했으며, GI 명단에 대한 협의도 진행 중이다. 5차 협상과 최종 협상은 오는 10월 열린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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