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세 전경숙 신학박사
14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 이천환관에서 열린 ‘2018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 이날 박사학위 졸업장을 받은 전경숙(67)씨 눈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그토록 하고 싶어 시작한 공부였지만 박사학위를 따기까지 무려 26년이 걸렸다. 그간의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았기에 전씨는 연신 가슴이 벅차올랐다.
전씨가 이 대학 신학전문대학원 신학과 박사과정에 문을 두드린 건 15년 전인 2004년. 석사 학위를 따는데 준비한 기간까지 합치면 26년 만에 박사 학위를 딴 셈이다. 그가 15년 걸려 완성한 논문은 전씨가 가장 좋아하는 독일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가 주인공이다. 동판화 작품 ‘네 마녀’ 속에 뒤러가 새겨 넣은 이니셜 ‘O.G.H’와 숨겨진 신학적 메시지를 탐구했다.
물론 전씨도 처음부터 신학박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오로지 공부가 좋아 관심사를 좇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부산대 수학과를 졸업한 전씨는 결혼 전 부산에서 중학교 수학교사로 일했다. 하지만 결혼 후 딸 셋을 낳고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 하면서 그토록 좋아하던 공부는 잠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공부에 대한 꿈까지 놓진 않았다. 전씨는 남편이 출근하고 딸들이 학교에 가면 시간이 날 때마다 집 근처 대학교 도서관을 찾아 공부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전씨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 남편 몰래 직장인 영어반이나 외국어학당을 다니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전씨는 평소 관심 많았던 르네상스 미술로 눈을 돌렸다. 르네상스 미술은 종교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제대로 공부하기 어려운 만큼 전씨는 먼저 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 먹고 본격적으로 대학원 시험을 준비했다. 한신대 신학과에서 3년 만에 석사학위를 딴 그는 곧장 성공회대 신학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예술을 공부하는 신부님을 지도교수로 두며 5년 만에 박사 과정을 수료했지만, 문제는 논문이었다. 손주 5명을 돌보며 논문을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남들은 빠르면 4~5년 만에 박사를 받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연달아 결혼하고 손주들도 태어나면서 도저히 책을 잡을 시간이 나지 않았다”라면서도 “아이들 돌보면서 틈틈이 하는 공부가 산소 같은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다. 전씨는 바쁜 딸을 대신해 손주를 돌보면서도 틈틈이 책을 펼쳤다. 주말이 되면 아예 작정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했다.
전씨의 불타는 학구열은 가족에게까지 옮겨 붙었다.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리는 전씨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자란 세 딸은 자연스레 책 속에 파묻혀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결과 세 딸 모두 서울대에 진학했다. 의사인 남편 역시 밤마다 책을 읽는 아내를 보고 덩달아 책을 잡았다. “당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함께 책을 보고 싶어진다”며 요즘 인문학 공부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꿈에 그리던 박사 논문을 완성한 뒤 허전함은 없을까. 전씨는 오히려 담담했다. “멋지고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의 삶은 흥미롭잖아요. 그런 열정적인 사람들의 삶을 만나는 건 책을 통해서예요. 그게 재미있어서 공부도 계속 해 왔던 것이고요. 앞으로도 늘 책을 가까이 하며 살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또 언제가 쓰고 싶은 내용이 생기지 않을까요.”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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