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원래 금방 뜨거워졌다가 식는 나라다."
지난 12일 일본 화장품 회사 DHC가 운영하는 동영상 채널 ‘DHC텔레비전’에 출연한 아오야마 시게하루 일본 자민당 의원은 한국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이같이 비하했다. DHC를 비롯한 일본 제품들이 우수한 제품력으로 한국에서 시장을 넓혀왔고, 이를 쉽게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한편에선 일본 국민들은 한국 분위기와 다르게 대체로 이번 사안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들불처럼 번지는 한국에서의 일본제품 불매운동 분위기와는 온도차가 커 보인다.
이 때문에 불매운동이 일본에 미치는 경제적 타격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수출산업이 소비재 중심이 아니고 부품ㆍ소재를 중심으로 돼 있기 때문에 소비재에 치중한 국민들의 불매운동은 큰 타격을 주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런 이유로 산케이 전 (서울)지국장은 ‘불매운동을 할 거면 일본 부품이 많이 들어가 있는 갤럭시 스마트폰부터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자칫 선량한 한국기업, 중소 업체에 되레 피해를 주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경제학에는 ‘화폐투표’라는 개념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 투표권을 행사하듯이, 자유시장 경제하의 소비자가 부도덕하거나 불공정한 행위를 일삼는 회사의 제품을 불매해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화폐투표의 영향력은 "소비자주권"과 직결된다. 일본의 수출 산업이 소비자와 접점이 적더라도 소비자는 ‘화폐투표’를 통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해야 기업과 사회, 나아가 다른 나라의 태도까지 바꿀 수 있다. 외교적 노력 뒤에는 국민의 단합된 힘이 작용한다는 얘기다.
선량한 국내 기업 피해를 걱정하는 것도 기우이다. 최근 소비자 불매운동은 매우 정교해지고 있다. 무조건적인 제품 불매가 아니라, 부도덕하거나 국익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기업을 선별해내고 공유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기업의 지배구조와 주주배당, 기업이 세금을 내는 나라에 대한 정보까지 분석하고 찾아내서 ‘작전’을 짜고 있다. 무분별한 불매운동이나 일본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 또한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 순수하고 자발적인 의지를 모아야만 큰 힘이 된다고 얘기하며 서로를 다독이고 있다.
이런 우리 국민의 모습을 보면서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유관순 열사가 100년 전 독립을 꿈꾸며 서대문형무소에서 부르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 노래는 1919년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형무소 8호실에서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6인(김향화·권애라·신관빈·심명철·임명애·어윤희)과 함께 불렀던 노래로, 7인의 여성독립투사는 조국 독립의 염원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끔찍한 고문을 함께 견뎠다고 한다. 7인 중 한명인 심명철 지사의 아들 문수일씨가 기록해서 간직하다가 문씨가 올해 초 한국일보에 창가의 존재를 처음 공개했다. 한국일보는 올해 3월 이 가사에 가수 안예은과 함께 곡을 붙여 공개하기도 했다.
유관순 열사와 동료들의 노래는 총과 칼에 맞설 수 있는 무기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의 노래와 기도가 결국 독립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최근 한 누리꾼이 남긴 한마디가 화제가 됐다.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 독립운동처럼 목숨 바치는 일도 아닌데 어려울 게 뭐 있나.” ‘8호 감방의 노래’의 가사를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강희경 영상콘텐츠팀장 kst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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