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21> 푸젠 고촌 ③ 구이펑고촌과 타이닝고성
푸젠성 구이펑고촌 채씨조묘에 ‘곡죽생순’을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진나라 맹종이 한겨울에 어머니를 위해 죽순을 구해 탕을 끓였다는 고사를 표현하고 있다.

푸젠 중부의 여우시(尤溪)는 사상가 주희의 출생지다. 공묘 대성전에는 열두 명의 제자 십이철(十二哲)이 협시하고 있다. 1,000년도 훨씬 더 지나 유교를 새로이 집대성한 주희만이 직계 제자가 아니다. 그는 관직에 올랐지만 남송 정권의 세태를 비판하며 집필과 후학 양성에 힘쓴다. 부친 주송이 현위로 근무하던 때 태어난 주희는 어린 시절부터 사숙에서 공부했다. 사숙은 주희 사후 사당으로 변했으며 황제는 남계서원 편액을 하사했다.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주희 사당인 문공사에 엄마와 함께 온 어린 꼬마가 절을 하고 있다. 주송 사당에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붓이 진열돼 있다.

푸젠성 여우시의 남계서원 주자 사당.
남계서원 주송 사당의 대형 붓.

여우시에서 동북쪽 60km 거리에 ‘성리학’ 마을 구이펑고촌(桂峰古村)이 있다. 고촌을 찾기 위해 주희 출생지에 왔다. 교통이 순조롭지 않은 골짜기 산골이다. 아침 일찍 터미널에서 양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양중에서는 고촌으로 가는 대중교통이 없다. 수소문 끝에 자가용 하나를 찾았다. 흥정을 마치고 40여분 꼬불꼬불한 산길을 가파르게 올라 고촌에 도착한다.

구이펑고촌 지도.
구이펑고촌의 인풍정 술단지.

입구에 들어서니 인풍정(引风亭) 앞에 술단지 70여개가 마치 관중석의 관객처럼 앉았다. 은은한 분홍빛 종이에 풍부하다는 의미의 ‘펑(丰)’을 하나씩 들고 응원하는 모양새다. 구이펑의 봉우리와 발음이 같다. 고촌의 풍요로운 역사와 풍성한 삶을 상징하는 듯하다. 지도를 보니 산에서 흘러내린 도랑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석교에서 왼쪽으로 올라간 후 한 바퀴 돌아 오른쪽으로 내려오면 된다. 크지 않은 산골이지만 고건축물이 39채나 된다. 대부분 청나라시대 가옥이다.

구이펑고촌 채씨종사 대문.
구이펑고촌 채씨종사에 ‘부자거인’이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구이펑고촌은 채씨 집성촌으로 채령(蔡岭)이라고도 불린다. 북송시대 문인이자 서예가인 채양의 9세손 채장이 1247년 처음 이주했다. 먼저 채씨종사를 찾는다. 부자거인(父子擧人) 편액이 반갑게 맞아준다. 도광제(청나라 8대 황제) 때인 1849년 채사운과 동치제(10대 황제) 때인 1870년 채종문 부자가 거인(擧人)이 됐다. 왼쪽 모퉁이에 자세히 기록했다. 가장 낮은 과거시험인 동시(童试)를 통과한 수재 중에서 향시를 통과하면 거인이 된다. 중앙에서 치르는 과거인 회시(会试)를 거쳐 진사가 나오고 전국 1위는 장원, 2위는 방안, 3위는 탐화가 된다. 이들 3명만이 급제 칭호를 받는다.

깨알처럼 찾으면 재미난 공부가 된다. 오른쪽에도 기록이 있다. 아들이 거인이 된 다음 해인 ‘동치 10년 신미년 겨울 길단(吉旦)’에 만들었다는 기록이다. 길단은 음력으로 매월 초하루이기도 하고 그냥 길일을 뜻하기도 한다. 본당으로 들어서니 형제거인도 걸렸다. 명청시대 이후 3명의 진사, 12명의 거인, 412명의 수재를 배출한 채씨 가문의 사당은 정말 휘황찬란하다. 충과 효, 편액과 대련으로 완벽하고 조화롭게 배치됐다. 명문가 사당의 풍모가 느껴진다. 산골이라고 우습게 볼 마을이 아니다.

구이펑고촌 채씨종사 편액. 가운데가 ‘저존’ 편액.
담백한 색감의 채씨종사 감실.

본당 가운데 걸린 저존(著存)이 뜻밖이다. 출처는 ‘예기’다. ‘치각즉저, 치애즉존(致悫则著, 致爱则存)’에서 나온 말인데 낯설고도 어렵다. ‘성실한 자세가 뚜렷하고 사랑이 영원히 존재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가문의 편액으로 채택된 찬사치고 고품격이다. 청나라 강희제 신유년, 즉 1681년 봄에 편액을 걸었다. 그해에 바로 채씨 문중에서 진사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용 문양이 있는 향로와 도자기 한 쌍을 두고 채씨 시조의 신위를 둔 목조 감실이 담백하다. 대체로 중국의 사당이 화려함으로 욕심을 부린 데 비하면 선비다운 색감이 아닐까 싶다. 드러내지 않는 자부심이야말로 진정 품격을 자랑하는 일이다.

채씨종사의 지붕.
채씨종사 담장의 ‘이십사효’ 중 한문제의 고사를 표현한 그림.

하늘이 예쁜 날이라 담장도 수채화를 보는 듯 화사하다. 푸젠 고건축 구춰(古厝)처럼 뻗은 모양도 인상적이다. 지붕과 기와 사이에 새긴 효에 대한 고사가 눈에 띈다. 주인공을 투각(윤각을 강조하는 조각 기법)으로 드러낸 솜씨도 독특하다. 한나라 문제가 와병 중인 어머니를 위해 탕약을 먼저 맛봤다는 이야기다. 이를 시질상약(侍疾尝药)이라 한다. 원나라 때 곽거경이 편찬한 역대 효에 관한 이야기인 ‘이십사효(二十四孝)’에 나온다. 황제의 효심을 본받아 가문을 일으키길 바라는 마음이야 두말해서 무엇하랴?

구이펑고촌 골목의 ‘미인항’.
구이펑고촌 민가 러우핑팅구춰.

사진을 찍으면 ‘가장 예쁘게 나오는 골목’이 있다. 토담과 돌담이 이어지고 그림자가 드리운 골목에 이끼가 푸릇푸릇 자라니 눈여겨본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인가 보다. 안으로 조금 들어가니 뜻밖에도 미인항(美人巷)이 나온다. 햇볕이 따갑기도 하지만 느닷없이 미인이 나올만한 길은 아니다. 좁은 골목에 러우핑팅구춰(楼坪厅古厝)라고 씌여 있다. 소박하고 담담한 편액과 목조 문양이 인상적이다. 산으로 계속 오르면 마을 전체가 조망되는 관망대가 나온다. 집이 다닥다닥 붙어 옹기종기 살아온 세월이 느껴진다.

구이펑고촌 옥천서재 안의 주희 초상.
지붕 위에 죽순을 널어 말리고 있다.

마을 끝자락에 옥천서재(玉泉書齋)가 보인다. 마을 아이들이 공부하던 작은 서원이다. 지금은 찾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 썰렁하다. 주희의 초상만이 성리학을 설파하던 공간임을 알리고 있다. 마을을 내려다보며 골목을 따라간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햇볕은 따갑다. 지붕 위에 죽순이 따뜻하게 온기를 흡수하고 있다. 껍질을 벗기고 얇게 자른 죽순을 찐 후 소금을 살짝 머금은 채 바람과 햇볕에 말린다. 물기가 빠지면 부드럽고 영양이 풍부한 재료가 된다. 오래 보관도 가능하며 탕이나 볶음요리 재료로 일품이다.

구이펑고촌 채씨조묘의 여러 편액.
채씨조묘의 편액 중 ‘구봉육수’

고촌 중심에 조묘가 있는데 사당보다 먼저 생겼다. 청산을 등지고 녹수가 흐르며 수맥이 웅장하고 집터가 준수하면 명당이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을 비봉함서(飛鳳銜書)라 하는데 딱 그 자리다. 정당(正堂)은 편액 전시장이다. 진사, 거인, 공원, 문괴와 무괴는 모두 과거 통과를 경축하고 있다. 앞쪽만으로 모자라 왼쪽과 오른쪽도 채웠다. 관직에 오른 문인이나 무인이 많았던 가문이라는 장식이다. 구봉육수(九峰毓秀)는 더 뿌듯한 자랑이다. 아홉 봉우리는 ‘좋은 환경’이거나 구이펑고촌이다. 우수한 인물이 많이 나온다는 뜻이니 형형색색, 개성 넘치는 필체로 담은 편액을 보는 재미가 있다.

채씨조묘의 ‘이십사효’ 중 와빙구리 벽화 장식.
푸젠성 구이펑고촌 채씨조묘에 ‘곡죽생순’을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진나라 맹종이 한겨울에 어머니를 위해 죽순을 구해 탕을 끓였다는 고사를 표현하고 있다.

조묘에도 ‘이십사효’가 새겨져 있다. 양쪽 담장에 각각 고사가 담겼다. 왕상은 어머니를 여의고 자애롭지 못한 계모 아래 자랐다. 계모가 한겨울에 살아있는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자 빙판 위에서 옷도 입지 않고 잉어를 잡아 대접했다. 와빙구리(卧冰求鲤)다. 맹종도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살았다. 어느 겨울 위독한 어머니가 죽순탕을 먹고 싶어 하자 겨울이라 그저 대나무를 끌어안고 울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감동했는지 죽순이 솟아올라 탕을 드리니 어머니 병이 호전됐다. 곡죽생순(哭竹生筍)이다. 왕상과 맹종 모두 기원전 진(晋)나라 사람이다.

구이펑고촌 골목의 홍등과 그림자.
구이펑고촌의 다탸오멘 국수.

마을을 다 둘러보고 내려오다가 홍등이 걸린 골목을 지난다. 햇볕이 비친 홍등 그림자를 밟으며 걷는다. 밤이 오면 그림자는 사라지려나, 홍등은 더욱 붉어지려나. 처음 올랐던 갈래 길로 돌아왔다. 도랑이 흐르고 돌다리가 두 개 있다. 석교식당으로 들어간다. 국수를 먹고 싶다 하니 아주머니는 물부터 끓이고 면을 익힌 후 버섯, 새우, 죽순, 채소와 고기까지 두루 넣는다. 면을 건지고 달걀까지 올리니 정말 푸짐하고 담백하다. 국수 이름이 다탸오멘(大条面)이다. 이 지방에서만 먹는 국수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각 지방의 특색있는 국수를 맛보기 마련이다. 한 그릇만 주문해도 되고 비싸지 않으며 시간도 줄일 수 있다.

다시 여우시로 돌아와 서둘러 기차역으로 갔다. 서북쪽 타이닝(泰宁)까지 약 1시간, 다시 버스로 고성에 도착했다. 무이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도시로 ‘양송명성(兩宋名城)’이라 불린다. 고성 안에는 400년 역사를 지닌 고건축이 있다. 1988년부터 ‘전국중점문물’로 보호하는 상서제(尚書第)다. 태자를 보필하는 태사와 병부상서를 역임한 이춘엽이 57세에 용퇴한 후 귀향해 지은 저택이다. 남방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명나라 건축물이다.

타이닝고성의 상서제 전경 벽화.

남쪽 문으로 들어가면 긴 통로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대문 다섯 개가 나란하다. 약 5,000㎡ 공간에 가옥이 다섯 채라 오복당(五福堂)으로 불린다. 남북 길이가 87m, 동서로 너비가 60m에 이른다. 집은 서로 통로로 연결돼 있다. 첫 건물은 식당으로 사용하던 선당(膳堂)으로 주로 마부나 가마꾼이 식사하던 장소다. 벽면에 상서제 전경이 담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상서제의 ‘사세일품’ 편액 대문.
상서제의 12폭 병풍과 물에 비친 모습.
상서제의 ‘청궁태사’ 천정.

본채 입구에는 황제가 하사한 편액인 사세일품(四世一品)이 걸렸다. 충신 반열에 드는 공을 세운 이춘엽 부부를 비롯해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까지 4대를 아울러 찬양했다. 직함은 아니어도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청궁태사(青宮太師) 편액이 걸린 방에 12폭짜리 병풍이 자리 잡고 있다. 방과 방 사이에는 하늘이 뚫린 천정(天井)이 있다. 몸을 낮춰 보면 물항아리에 비친 병풍과 문지방이 모두 데칼코마니로 등장한다.

상서제에서 만난 필리핀 학생들.

효우당(孝友堂)으로 들어서니 하늘색과 노란색의 단체복을 입은 학생들이 왁자지껄하다. 필리핀에서 수학여행을 왔단다. 100명도 넘는 중학생이 재잘거리니 한가하던 저택이 잔칫날 같다. 문 앞에서 아이 넷이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다. 물항아리 속 모습을 보여줬더니 까르륵 넘어갈 정도로 웃는다. 어느 나라든지 낙엽만 굴러도 깔깔거리는 나이는 속일 수 없나 보다.

황제가 하사한 상서제의 ‘효념’ 편액

문을 여니 효념(孝恬)이 등장한다. 아주 작은 글씨로 옥음(玉音ㆍ천자의 말씀)이라 도금했다. 명나라 황제는 당시 대학사이자 서예가인 장서도의 저서에서 집자해 이춘엽 어머니의 90세 수연에 하사했다. 강한 오후 햇볕이 문의 색감을 다 앗아갔다. 하얗게 변한 문고리 때문인지 ‘효심이 완벽하다’는 뜻을 더 순백으로 치장한 느낌이다. 마름모 안에 새긴 복(福)과 수(壽)도 더 그럴듯해 보인다.

상서제의 이춘엽과 외삼촌 인형.

타이닝에는 ‘천상에는 뇌공(天上雷公), 지상에는 구공(地上舅公)’이란 말이 있다. 하늘에는 천둥을 관장하는 도교의 신이 있으며 땅에는 외삼촌이 있다는 말이다. 상인이던 이춘엽의 아버지는 타향에서 객사했다. 이춘엽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외삼촌의 정성이 있었기에 16세에 수재에 합격한다. 붓을 든 학동과 외삼촌의 모습이 다정하다. 연로한 노모에게 효를 다하려고 공직에서 물러난 아들, 어머니를 위해 황은까지 드렸으니 ‘외삼촌 최고!’라고 해도 좋으리라. 각박한 세태라 ‘중국 타이닝에는 구공이 있다’고 하면 이해 불가한 사람이 참 많을 듯하다.

타이닝고성의 홍등과 상서제 영상.
타이닝고성 입구.

구이펑고촌과 타이닝고성에선 자꾸 ‘효도’만 보인다. 상서제를 나오니 어둡다. 고성은 홍등으로 물들어간다. 4대까지 명예를 얻은 상서제는 타이닝의 자랑이다. 고성 벽에 상서제의 영상이 비치고 있다. 홍등과 ‘사세일품’ 장면이 어울리는 고성의 밤이다. 고성 입구에 엄마 따라 나온 아이들이 밤늦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고 하던가? ‘이십사효’도 ‘효념’도 구시대의 유물처럼 낯선 세상이다. 그저 튼튼하게 자라기만 하면 될 일인지 잘 모르겠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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