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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으로 내게 편지를 쓰신 어머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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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으로 내게 편지를 쓰신 어머니, 고맙습니다

입력
2019.08.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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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편지 읽으며 마음 다잡고 공부

은동엽 내과전문의는 “어머니가 남기고 간 편지 속의 삐뚤빼뚤한 글자 모양이 어머니의 손가락을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은동엽 내과전문의는 “어머니가 남기고 간 편지 속의 삐뚤빼뚤한 글자 모양이 어머니의 손가락을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힘들지만 건강 챙기고 공부 열심히 해라. 착하게 살아라.’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책상에 어머니가 남기고 간 편지가 놓여 있었다.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쓴 글씨는 획이 꺾이는 부분이 옹이처럼 깊고 단단해 보였다. 나는 삐뚤빼뚤한 글자 모양이 어머니의 손가락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농사일 때문에 그때 이미 손가락이 휘어지고 있었다.

8남매의 막둥이인 나에게 어머니는 ‘일하는 사람’이었다. 수건을 머리에 둘러쓰고 하루 종일 일만 하셨다. 내가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일곱 살 무렵 누나들이 살고 있는 대구로 나올 때까지 어머니는 늘 나를 곁에 두고 밭을 매고 잡초를 뽑고 수확한 농작물을 경운기에 실었다. 8남매의 무게는 손가락을 휘게 할 정도로 무겁고 혹독했다.

초등학교 내내 나는 학교에서 ‘부모 없는 아이’였다. 누나들이 돌보기는 했지만, 각자의 삶을 헤쳐나가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알뜰히 돌보아주는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시니 아무래도 표시가 났을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선생님이 점심시간이 되면 늘 당신 옆에 앉혀놓고 식사를 했다. 김치나 마른멸치 따위가 전부였던 내 반찬통에 비해 계란말이에 햄까지 들어있는 선생님의 도시락은 진수성찬이었다. 선생님이 밥 위에 얹어주시던 계란말이를 게눈 감추듯 입안에 넣던 순간을 생각하면 빙긋이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선생님들의 배려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늘 반장과 부반장을 도맡았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편지를 썼던 중학생 시절, 부모님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사를 고민했을 만큼 농사가 잘 안 됐고, 어처구니없는 일로 친척들과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심적인 고통까지 겹쳤다. 가장 믿었던 사람들과의 갈등이었던 터라 아버지는 때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도우느라 몇 배로 더 부지런해졌고,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나로서는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편지에 담긴 당부들을 신앙처럼 마음에 품고 살았다.

힘든 상황이 나를 채찍질한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공부를 잘했다. 공부에 투자한 에너지에 비하면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주말 혹은 방학이 시작되면 첫날에 곧장 아버지가 계시는 시골로 내려갔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아버지에게 오십견이 왔고, 유난히 덩치가 컸던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이미 유능한 일꾼이었다. 방학엔 농부처럼 살았다.

공부 비결은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거였다. 오십견에도 쉬지 않고 농사를 짓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당부를 생각하면 한순간이라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친구가 옆에서 떠들기라도 하면 “조용히 해라. 선생님 말씀 안 들린다”하면서 타박을 줬다. 반에서 늘 집중해서 잘 듣는 학생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당신의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릴 때 유방암으로 돌아가셨다. 언니 손에서 자랐다. 어머니로부터 어머니를 배우지 못했지만, 당신은 그 어떤 어머니보다 훌륭하셨다. 좋은 모범을 보고 배운 대로 해도 위대하다. 그러나 내 어머니는 그저 알뜰한 마음과 지극한 실천만으로 내게 더없이 훌륭한 어머니가 되어주셨다. 그것이 한없이 고맙다. 허리가 휘고 손가락이 비틀어지는 어머니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 이유다.

오래된 노래지만 ‘부모’라는 노래를 들으면 늘 내 어머니가 생각난다. 노래 속 주인공은 밤늦도록 어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부쩍 적적해하시는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내게도 큰 위로가 된다. “내가 너무 늙어서 맛있는 것도 몬(못) 해주고 내가 인자(이제) 쓸모가 없다”고 하시지만, 어머니가 계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그것뿐이랴, 편지에 담겼던 그 삐뚤빼뚤한 글씨만큼이나 틀어지고 휘어진 어머니의 몸 자체가 내게는 자애롭고도 엄중한 말씀이 담긴 편지다. 그보다 큰 가르침과 위로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은동엽 따뜻한속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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