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
구릿빛 얼굴을 한 청년이 나에게 경례를 붙였다. 내가 어리둥절해서 쳐다보자 모자를 벗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때서야 “어머머!” 하면서 어깨를 두드렸다.
그 친구와의 인연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처음 봤을 때는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다. 매일 아침 교복을 입고 재활원에 들렀다. 가방을 벗어놓고 식판을 나르는가 하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돕기도 했다.
재활원은 아침 식사 시간만 되면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직원들도 허둥대기 일쑤였다. 그 친구는 우리의 가장 든든한 지원병이었다. 맡은 일을 다 하고 나면 가방을 들쳐메면서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굣길에 다시 재활원에 들렀다. 장애인들의 목욕을 돕거나 산책에 동행했다.
배식 봉사를 하고 학교로 향하던 그 친구는 이듬해에 동료들을 만들어왔다. 후배들과 함께 봉사를 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그 후배들을 중심으로 봉사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작은 씨앗이 나무로 자라나고, 급기야 숲을 이루어가는 광경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그 순수하고 싱싱한 나무 그늘 아래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엄마 재활원에 후원을 할 거야.”
어느 날부턴가 딸아이가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모았다. 그렇게 몇 달 동안 2만원을 모아서 재활원에 가져갔다. 나는 아이에게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했다.
“이건 보물이야!”
딸아이는 생애 처음으로 받은 기부금 영수증을 책상의 유리 밑에 넣어두었다. 2만 원 기부로 딸아이는 얼마나 자주 행복감을 느낄 것인가. 저 작은 씨앗이 평생 기부하는 습관을 만들어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작은 씨앗들은 소중하다. 큰 기업에서 거금을 준다면야 ‘한방’에 해결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길게 보면 빗물이 모이듯 작은 마음들이 오히려 더 큰 일을 해낸다고 생각한다.
작은 씨앗 같은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손님들이 놓고 간 분실물 중에서 주인과 상봉에 실패한 물품들을 기부하는 택시 기사, 텃밭에서 키운 열무와 나물 따위를 들고 오시는 농부, 산에서 뜯은 약초로 천연스킨을 만들어 “우리가 써보다 좋더라”면서 피부가 건조한 장애인들에게 나누어주라고 건네시는 노부부 등 크고 작은 기부의 손길이 갖가지 꽃이 핀 정원처럼 아름답다.
이런 분들은 재활원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미안해한다. 상장을 드리려고 하면 “우리는 그런 거 바라고 하는 거 아니다”고 손사래를 친다. 최근 들어 봉사활동 점수 때문에 실적을 쌓으려고 찾아오는 분들도 종종 있지만, 아직 순수한 마음들이 훨씬 더 많다.
‘천원의 기적’ 캠페인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10만명이 목표라고 들었다. 1,000원 기부로 기부의 습관을 만든다는 취지가 너무 멋있어 보인다. 딸아이처럼 태어나 처음으로 기부에 동참하는 고사리손들이 얼마나 많을까. 기부는 규모가 아니라 습관이라는 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당장의 효과도 있다. 말하자면, 행복이 오면 웃겠다는 사람과 웃으면 행복이 온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기부는 행복을 불러오는 비결이다. 기부하면서 찡그리는 사람은 없으니까. - 찡그린다면 그건 잘못된 기부다. ‘천원의 기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웃을 것인가. 1,000원을 받고서 행복한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1,000원을 기부한 사람은 모두 행복해질 것이다. 게다가 10만명이 공감하는 행복이라니. 그래, 이건 ‘기적’이다!
임소영 성보재활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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