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2일(현지시간) 저소득층 이민자들의 영주권 발급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이민 규정을 발표했다. 이민정책의 축을 가족 기반 대신 능력 기반 위주로 옮겨 자국민에게 재정부담을 주는 이민자들은 내치겠다는 것으로, 야권과 이민자 관련 시민단체들은 소송까지 예고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 소속 시민이민국(CIS)이 발표한 837페이지 분량의 새 규정에 따르면 10월 15일부터는 일정 기간 이상 식료품 할인구매권이나 주거ㆍ의료비 지원 등 정부 복지혜택을 받은 이민자들의 비자나 영주권 발급이 임시적ㆍ영구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 이는 기존 이민법에 명시된 기준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지금까지는 소득의 50% 이상을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생활보호 대상자에 한해서만 영주권 발급을 제한해 왔다.
켄 쿠치넬리 CIS 국장 대행은 백악관 브리핑에서 “우리는 이 나라로 오는 사람들이 자급자족적이기를 바란다”며 “이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 원칙이자 합법 이민의 역사에 깊이 각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별도의 요약 자료에서도 “미국 시민이 아닌 자들이 공적 부조 혜택을 남용해 취약한 미국인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위협하게 둬선 안 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민자들은 재정적 자립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 반발을 피하기 위해 기존 법과 제도를 강화하는 우회 방식으로 이민 문턱을 높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새 규정은 너무 가난하다는 이유로 수십만 명의 비자와 영주권 발급을 거부함으로써 합법적 이민자 규모를 절반으로 줄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정부는 연평균 54만4,000명의 영주권 신청자 가운데 38만 2,000여명이 이번 조치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난한 이민자들을 정조준한 이번 규제안에 민주당 성향의 자치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 겸 법무장관은 성명을 내고 “트럼프 행정부의 새 규정은 자신과 가족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로부터 또 한 차례 등을 돌리는 처사”라며 “나는 뉴욕의 모든 공동체를 보호하는 데 전념하고 있고, 따라서 이 지독한 규정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것”이라고 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반대소송 예고가 이어졌다. 민주당 소속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하비어 베세라 주 검찰총장 겸 법무장관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이는 이민자 가족과 유색인종 공동체의 건강과 복지를 타깃으로 한 무모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주 정부 차원에서 후속 조치를 위한 세부사항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그 외 전국 이민법센터(NILC) 등 시민단체들도 발효를 막기 위한 소송에 나설 뜻을 밝혔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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