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장편소설 ‘그 남자 264’(문학세계사)를 쓴 고은주 작가에게 친서를 보냈다. ‘그 남자 264’는 ‘청포도’ ‘광야’ 등의 시로 널리 알려진 저항시인 이육사를 다룬 소설이다. 고 작가는 12일 페이스북 자신의 계정에 “대통령께서 책 잘 읽었다고 써준 편지를 청와대 연풍문 회의실에서 김영배 민정비서관으로부터 전달 받았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작가에게 친히 편지를 보낸 내막은 이렇다. 고 작가는 내달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완공되는 이육사기념관 건립에 보탬을 준 당시 성북구청장 김영배 민정비서관에게 책을 보내며 대통령에게도 함께 책을 보냈다. 고 작가는 “책을 보내고 난 다음날 일본의 한국 백색국가 배제 결정이 내려졌고, 바쁜 시국에 대통령이 책을 읽을 틈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 주 김영배 민정비서관으로부터 대통령께서 책 잘 읽었다고 내게 편지까지 써주셨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조은주 작가님께’로 시작하는 친서에서 “육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고, 특히 그의 시 ‘광야’를 매우 좋아한다”며 “소설 내용처럼 저 역시 지금까지 당연히 넓을 광의 ‘광야’일 것으로 여겨 오다가, 빌 광의 ‘광야’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의미가 절실하게 다가온다”고 썼다. 이어 “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광복군에 합류한 김원봉의 조선 의용대를 말한 이후 논란을 보면서 이육사 시인도 의열단이었다고 주변에 말하곤 했는데, 소설에 그런 내용들이 담겨 있어 기뻤다”고 적었다.
고 작가는 “국가적으로 너무도 중차대한 시기이므로 항일 투사 이육사의 인생 이야기에 힘을 얻고 싶으셨던 것일까? 아니면, 저항 시인 이육사의 아름다운 시에서 위안을 얻고 싶으셨던 것일 것?”라고 자문했다. 그러면서 1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에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자고 말한 문 대통령의 발언을 언급하며 “적대적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인류애에 기초한 평등과 평화공존의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는 오늘 대통령의 메시지에서 육사의 투쟁과 문학을 이끌어왔던 진정한 선비정신의 기품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소문난 독서광이기도 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전에도 자주 주변에 책을 선물하거나 소개해 왔다. 앞서 7일에는 청와대 전 직원에게 젊은 세대의 삶의 방식과 경향을 설명한 책 ‘90년대생이 온다’를 선물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정신과의사이자 치유전문가인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취임 후 첫 여름휴가 때는 ‘명견만리’를 추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읽거나 추천한 책들은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화제를 낳았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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