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하고 비옥해서 축복받은 땅이라고 하는 자바에서 기아에 시달린다는 걸 상상해 보셨나요?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답니다. 몇 해 전에는 한 마을 주민이 모조리 굶어 죽었지요. 당시 어미들은 식량을 구하려고 자식을 내다팔았고, 심지어 자식을 잡아먹는 끔찍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타툴리(엄청난 고통을 받은 자라는 뜻)’라는 필명의 네덜란드인 에두아르트 다우어스 데커르(1820~1887)가 1860년 출간한 자전적 소설 ‘막스 하벨라르’에서 고발한 당시 네덜란드 식민 지배하의 인도네시아 현실(108쪽)이다. ‘분개와 슬픔을 풍자와 해학이라는 장막을 씌워 위장해야만 하나요’라는 화자의 절규처럼, 소설은 웃기고 서글프다.
우리에겐 생소한 소설이지만, 1907년 ‘당대 최고 저서 10권을 추천해 달라’는 출판사 제의에 정신분석학 창시자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첫손가락에 꼽았고, 1999년 ‘뉴욕타임스’가 ‘지난 1,000년 베스트 스토리’의 하나로 선정한 작품이다.
출간 이후 수탈을 일삼던 네덜란드 식민 정책을 바꾸는 데 일조했고, 작가 사후 100년 뒤엔 공정무역이라는 새길을 세상에 열었다. 자기가 재배한 커피원두를 다국적 기업의 수족 노릇 하는 중간상에게 헐값에 넘기고 고리채에 시달리는 멕시코 농민들을 본 프란스 환 호프 신부가 1973년 커피협동조합을 만들어 ‘막스 하벨라르’라는 상표를 붙인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사 물줄기를 (두 번) 바꾼 고발문학’이라는 부제가 손색없는 소설의 완역본이 최근 국내에 출간됐다. 10일엔 출간 기념 북 콘서트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 한국문화원에서 열렸다. 70여명이 모였다. 세 명의 화자가 세 가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소설의 액자 구성처럼, 자타 공인하는 인도네시아 전문가 세 명이 팀을 꾸려 2년 넘게 공들인 작업이다.
제1역자이자 ‘국내 동남아 박사 학위 1호’ 양승윤(73)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번역은 반역’이라는 교수 사회의 금언을 최대한 유념하면서 평생 쌓아 온 인도네시아 연구 역량을 전부 쏟아부었다”라며 “인도네시아를 이해하는 대표적인 책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2역자인 배동선(56) 작가는 “2016년 말 막스 하벨라르를 기념하는 자카르타 한 카페에서 세 명이 의기투합한 뒤, 제가 세 개의 판본을 구해 완성한 초고 1,400장에 양 교수님이 800장을 추가했다”고 소개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면 독자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심정으로 양 교수를 괴롭혔다”는 전영랑 도서출판 시와진실 편집장의 말이 보증하듯, 책은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통치 350년 역사와 현지 지명 및 문화를 잘 모르더라도 술술 읽힌다.
사공경(64) 한인니문화연구원장은 현지에서 막스 하벨라르의 150여년 전 발자취를 좇았다. 그는 “인도네시아 사회 교과서에 소개된 내용을 보고도 반신반의했는데 관련 박물관을 직접 찾아내는 등 현장을 답사하고 연구하면서 이 책의 가치를 온몸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북 콘서트에 참석한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은 “흥미롭고, 친절하고, 우리의 과거(일제강점기)와 현재를 대입해도 들어맞는 책”이라고 평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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