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 성소수자에 대한 수용도가 최하위권에 머물 정도로 사회적 거부감이 심각하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몰이해는 말할 것도 없다.
국내 트랜스젠더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수행한 최초의 연구로 알려진 건, 성소수자 단체로 이뤄진 성전환자 인권실태 조사단의 2006년 조사다. 설문 대상 트랜스젠더 78명 가운데 68%인 53명이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회 정책으로 ‘성별변경에 대한 법안 마련’을 꼽았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지금도 성별 변경은 법률이 아닌 법원 내부 ‘사무처리지침’으로 남아 있다.
2006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법적 성별 변경을 허가한 대법원 결정에 따라 만들어진 가족관계등록예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에는 성별정정 허가 기준으로 △만 19세 이상의 행위능력자로 △사회생활상 전환된 성으로 살고 있고 △혼인 중이 아니면서 △부모의 동의를 얻었고 △의료적으로 2인 이상의 정신과 전문의의 정신과 진단이 있으며 △생식능력을 상실했고 △전환된 성으로의 외부성기 성형수술 등을 포함한 ‘성전환수술’을 받은 사람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침 수준이어서 판사에 따라 법원의 결정은 제각각이다. 커밍아웃을 한 국내 최초의 트랜스젠더 변호사인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박한희씨는 “지난달 인천가정법원이 부모 동의가 없어도 법적 성별 정정을 허가해 준 사례가 처음 나오긴 했지만 명시적인 법률이 없다 보니 다른 법원에서도 같은 결정이 나오리란 보장이 없다”며 “국회와 대법원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데 국회가 책임지고 나서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적 성별 정정 조건에서 성전환수술을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성소수자부모모임 운영위원이자 트랜스젠더 남성을 자녀로 둔 위니(활동명)씨는 “부모가 수술비를 지원해 주지 않을 경우 20대의 트렌스젠더는 수술비용을 모으는 데만 집중하다 막상 수술을 받고 나면 학업ㆍ경력 단절 등으로 인해 미래가 막막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건강보험 적용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성별 정정 조건으로 성전환수술을 요구하는 건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성전환수술을 받지 않아도 성별 정정을 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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