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범죄, 당신을 노린다] <12> 새희망씨앗 기부사기
※ 사기를 포함한 지능범죄는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더욱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일확천금의 미끼에 낚이는 순간,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가 매주 화요일 연재하는 지능범죄 시리즈에서는 그 덫을 피해가는 지혜까지 전해드립니다.
“고향이 충남이세요? 그럼 충남 쪽 아이를 지정해서 일대일로도 후원할 수 있어요.”
2015년 대전의 한 지하철역 대합실. 휠체어를 타고 가던 최창구(56)씨는 귀가 솔깃했다. 최씨 본인도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 그래서였을까. 요양병원을 들렀다 가는 길에 ‘불우아동 돕기’라 적힌 플래카드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새희망씨앗’이라고, 자라날 꿈나무들을 돕는다 했다.
망설이지 않았다. 2015년 10월 매달 만원씩 자동이체를 시작했다. 얼마 안 되는 장애인연금을 쪼갰다. 병원비와 생활비를 아꼈다. 있는 사람들에게야 푼돈에 불과한 만원이라지만, 최씨는 뿌듯했다. 후원하는 아이가 누군지 알 수 있다는 점도 믿음직스러웠다. 새희망씨앗에서 ‘나눔교육카드’라는 걸 줬다. 석 달 뒤 카드에 적힌 회원번호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입력하니 충남 보령시의 한 중학생 이름이 떴다. 부모 없이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최씨는 이듬해 6월엔 2만원, 10월엔 3만원으로 기부액을 늘렸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월 5만원까지 올릴 생각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씨는, 지인이 보여준 신문 기사를 읽었다. 사기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기부단체가 있는데, 그게 ‘새희망씨앗’이란 내용이었다. 맥이 탁 풀렸다. 최씨는 지금도 고개를 내젓는다.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을 칠 것이란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기에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 ‘사단법인’ 가면을 쓴 주식회사
3년간 새희망씨앗에 기부금을 낸 후원자는 4만9,750명, 후원금은 127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정작 복지시설에 전달된 건 고작 2억원 상당의 태블릿 같은 게 전부였다. 후원자들이 깜빡 속은 건 ‘정부가 인정한 비영리 사단법인’이란 타이틀이었다.
새희망씨앗이란 사단법인 설립 이전, 2014년 2월 같은 이름의 주식회사가 먼저 만들어졌다. 한글과 외국어 등 교육콘텐츠를 파는 회사다. 주식회사 설립 아홉 달 뒤 같은 이름의 사단법인이 만들어졌다. 같은 직원이,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실상 한 회사였다.
‘사단법인’ 새희망씨앗 회장 윤모(56)씨, ‘주식회사’ 새희망씨앗 대표 김모(39)씨의 합동작전이었다. 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 사단법인을 앞세워 기부금을 받은 뒤 이걸 교묘하게 주식회사의 영업으로 둔갑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서울, 인천, 대전 등에 21개 지점과 콜센터를 세웠다. 주식회사는 철저히 숨기고 사단법인만 내세웠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새희망씨앗’이라고만 표기했다.
콜센터의 전화요령 교육은 전문적인 텔레마케팅을 방불케 했다. 우선 “일대일 후원정보를 제공하는 나눔교육카드와 회원증, 기부금 영수증을 제공하겠다”며 후원금을 요청토록 했다.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지로 납부 등 다른 방식 대신 신용카드 할부 결제를 유도케 했다. 의심 섞인 질문을 받았을 때 대응하는 요령 등, 상세하게 표준화된 질의응답 매뉴얼이 만들어졌다.
새희망씨앗은 대담해졌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거스 히딩크 감독 등이 주최하는 공익행사에 참가해 ‘기부 단체’ 이미지를 굳혔다. 연예인 홍보대사도 위촉했다. 2015년 12월에는 서울시 추천을 받아 정부의 ‘지정기부금 단체’로 승격되기도 했다. 기부금 영수증을 직접 발행할 수 있게 됐다. ‘전국구’ 기부 단체가 되기 위해 주무관청을 서울시에서 여성가족부로 바꿔달라고 요청, 2016년 8월 승낙을 받아냈다.
◇ “기부가 아닌 구매였다” 돌변한 희망씨앗
2017년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김순명 경위는 제보를 받았다. “새희망씨앗의 기부는 기부가 아니라 교육콘텐츠 구입”이라는 내용이었다. 수사팀이 가동됐다. 후원 받는 아이들이 있다던 복지시설들을 접촉해왔다. 역시나 “그런 후원은 받아본 적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아니, 일대일 지정 기부는 개인정보보호 문제 때문에 아예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는 대답이었다.
기부금의 흐름을 따라갔다. 후원자들이 기부금으로 보낸 돈은 사단법인, 그리고 주식회사 새희망씨앗 명의의 통장에 번갈아 입금됐다. 애초에 약속한 일대일 후원 대상에겐 아예 전달이 되지 않았다. 2억원 정도가 쓰이긴 했다. 윤씨 친척이 운영하는 업체로부터 태블릿 같은 것은 단체로 주문해 복지시설에 전달했다.
이들 복지시설에는 태블릿과 함께 후원자들이 받은 나눔교육카드를 주고 ‘뻥튀기’ 기부영수증을 받아갔다. 이 영수증은 후원자들을 속이는 데 쓰였다. 나머지 돈은 당연히 윤씨, 김씨, 직원들 주머니에 들어갔다. 지점 60%, 본사 40% 비율로 분배됐다. 이 돈으로 집을, 차를 샀다. 일부는 요트파티를 열기도 했다.
김순명 경위는 첫 압수수색 때를 잊을 수 없다. 윤씨와 김씨는 당당했다. “우리는 모금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후원자들은 ‘주식회사’ 새희망씨앗의 교육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나눔교육카드를 구매한 것이고, ‘사단법인’ 새희망씨앗은 그 수익금의 일부를 자선사업에 썼으니 문제 없다는 논리였다.
처음엔 수사팀이 오히려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몰리기도 했다. 피해자 진술이 필요해 기부금을 낸 사람들을 접촉했더니 ‘일대일 후원’이란 마법에 걸린 피해자들이 전화건 경찰을 의심했던 것. 하지만 진술과 증거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윤씨와 김씨는 곧 구속됐다. 그제서야 피해자들 전화가 빗발쳤다. 김순명 경위는 “외근 한 번 갔다 오면 1,000통이 넘는 전화가 와 있었다”며 “대학교수를 비롯해 다양한 직업을 가진 피해자 분들 모두 좋은 뜻에서 소액 기부한 것이라 큰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상습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윤씨와 김씨는 지난 5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 김씨는 징역 1년 6월 형이 확정됐다.
◇희망을 짓밟고 불신만 남겼다
소액기부다 보니 대법원 확정 판결 소식을 전해 듣고서 그제서야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경우도 많다. 생활고에 치여 제대로 뉴스를 챙겨보긴 어렵지만, 그 와중에도 몇 만원이라도 쪼개 뭔가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한 이들이다. 노모(45)씨가 그런 경우였다. 노씨는 “2017년 4월부터 3만원씩 24개월 할부로 기부 신청을 해두고 잊고 지내다 최근에야 그게 ‘새희망씨앗’이란 걸 알았다”며 “솔직히 ‘이제 다시 기부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사건이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금액이야 1인당 적게는 5,000원에서 많게는 1,600만원 수준이다. 사기사건 피해액 치고는 적은 편이다. 하지만 노씨에게서 보듯 신뢰의 붕괴에서 오는 마음의 상처가 더 크다. 새희망씨앗 사건을 겪은 뒤 다른 단체에 내던 정기후원금을 끊었다는 얘기도 많다.
피해자들은 ‘새희망씨앗 피해자 모임’을 만들어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현재 607명이 참여 중이다. 새희망씨앗 지점장 등 21명에 대한 1심 재판도 진행 중이다. 기부금의 60%를 받아 챙긴 이들이었으니 범죄 수익금 환수 가능성은 더 커졌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기부금을 되돌려 받는 게 아니다. 피해자 모임 소송을 맡은 법무법인 위공의 박병언 변호사는 “피해자 분들이 생각하는 피해보상은 사기범들 수중에 있는 자신들의 기부금을, 어떻게든 원래 의도대로 좋은 곳에 쓰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 전했다.
이들의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 윤씨는 재판 과정에서 “이렇게 하는 곳이 여러 곳인데 왜 ‘새희망씨앗’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항변했다. 재판 받는 사람이 자신의 죗값을 덜기 위해 ‘나만 그러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윤씨 주장은 그냥 흘려 넘길만한 것은 아니다. 윤씨와 김씨는, 새희망씨앗 이전에 이와 비슷하게 운영된 한 교육콘텐츠 관련 업체 A사에서 함께 일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끼고 아껴 1만~2만원씩 짜낸, 그 귀한 돈을 받아 가로채는 제2, 제3의 새희망씨앗이 있을 수 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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