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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가족과 함께… 민혁이의 꿈 지켜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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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가족과 함께… 민혁이의 꿈 지켜주고 싶어요”

입력
2019.08.12 10:46
수정
2019.08.12 19:2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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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청원 나섰던 김군 친구들

“아버지도 난민 인정을” 입장문

이란 출신 김민혁(오른쪽)군과 김군 아버지 A(가운데)씨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이날 재심사에서도 A씨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인도적 체류만 허가했다. 홍인기 기자
이란 출신 김민혁(오른쪽)군과 김군 아버지 A(가운데)씨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이날 재심사에서도 A씨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인도적 체류만 허가했다. 홍인기 기자

“가족과 함께 사는, 당연한 행복의 조건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12일 이란 출신 난민 김민혁(16ㆍ한국 활동명)군의 서울 송파구 아주중학교 친구들이 다시 뭉쳤다. 친구의 난민 인정을 위해 청원운동을 벌였던 학생들이 이번엔 김군의 아버지 A(53)씨의 난민 인정을 위해 공식 입장문을 낸 것이다.

A씨는 지난 2010년 사업차 한국에 들어온 뒤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란 율법 샤리아는 개종자를 반역자에 준해 처벌토록 하고 있다. 이에 A씨는 난민 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했다. 지난 8일 재심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김군은 그나마 난민으로 인정받았지만, A씨에겐 ‘미성년 자녀가 있으니 1년간 인도적 체류를 허가한다’는 결정만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김군의 친구들, 이제는 졸업해 고등학생이 된 친구 30여명이 다시 모였다. 꼬박 나흘간 머리를 맞대고 입장문을 만들어 내놨다. 김군이 난민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을 때 친구를 위해 청원을 올리고 시위에 나섰던 친구들이었다.

지난해 7월 김민혁군 난민 인정을 위해 아주중학교 친구들(왼쪽)이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본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지민군 제공
지난해 7월 김민혁군 난민 인정을 위해 아주중학교 친구들(왼쪽)이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본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지민군 제공

김군 친구들은 아버지와 똑 같은 이유로 난민 신청을 했는데 아들은 인정하고 아버지는 인정하지 않은 것은 모순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김군 친구들은 “미성년자인 아들보다 어른인 아버지가 박해의 위험도가 더 높고, 아들이 난민 인정을 받은 작년보다 1년 후인 지금의 아버지 상황이 더 주목받는 건 누가 봐도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도 있었다. 이들은 “이번 판정은 포용과 존중을 배우려 했던 우리에게 배척과 편견이라는 독한 대답을 내놓은 셈”이라며 “국민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짓밟아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외쳤다. 이어 이런 사고방식이 “일제가 타민족이라는 이유로 우리 민족을 유린했던 것을 정당화한 생각, 주권을 잃어 난민과 같던 우리 백성을 위안부로, 징용으로 끌고 갔던 것을 합리화한 생각과 다른 생각일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했다.

김민혁군의 난민 지위 인정을 위해 나섰던 박지민(왼쪽에서 네 번째)군 등 아주중학교 친구들이 지난해 12월 20일 오현록(가운데) 교사와 함께 청와대 시위 때 사용한 피켓을 들고 밝게 웃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민혁군의 난민 지위 인정을 위해 나섰던 박지민(왼쪽에서 네 번째)군 등 아주중학교 친구들이 지난해 12월 20일 오현록(가운데) 교사와 함께 청와대 시위 때 사용한 피켓을 들고 밝게 웃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군 친구들이 김군에 이어 아버지의 난민 인정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건 당연한 수순이다. 김군을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박지민(16)군은 김군 아버지에 대한 난민 심사가 진행되던 지난 6월 이미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박군은 “한국 땅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던 민혁이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 친구들이 한마음으로 청원운동을 벌였다”며 “가족과 함께 지내는, 김군에겐 당연한 행복의 조건을 지켜주기 위해서 국회, 유엔난민기구(UNHCR) 등에 도움을 청하려 한다”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아주중학교 졸업생 30명의 입장문 전문

차마 쓸 수 없었던 입장문을 쓰다

-김민혁군 아버지 난민불인정 결정에 꺾인 꿈

2019년 8월 8일 우리는 한 개의 입장문을 들고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들어섰습니다. 난민인정과 난민불인정, 두 상황에 대한 입장문을 준비해야 했지만, 차마 난민불인정에 대한 입장문을 쓸 수 없었기에.

‘난민불인정, 1년 인도적 체류’라는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의 결정에 그래도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아직은 아빠와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민혁이, 불치병 선고를 받은 시한부 환자처럼 얼굴이 어두워지는 민혁이 아버님,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계시다 휘청이는 선생님을 보며 돌아서야 했던 우리가 가슴에 품었던 입장문, 난민인정이 됐을 때 내려 했던 입장문, ‘10년의 꿈이 이루어지다’, 그 기쁨의 입장문 대신 우리는 정말 꿈에서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입장문을 지금 씁니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15개월, 3년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던 1년 남짓의 시간, 여유를 낼 수 없던 우리의 시간과 싸우고 때로는 부모님의 걱정과 싸우고 또 때로는 우리의 나약함, 이기심과 싸우며 걸어왔던 길, 낭떠러지를 걷는 것 같은 위태로운 길이었기에 행여 우리로 인해 일을 그르칠까 마음 졸이며 지켜왔던 시간들,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부수어진 민혁이와 민혁이 아버님이 10년을 기다려 온 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똑같은 사유로 난민신청한 아들과 아버지에게, 아들은 박해의 위험이 있고, 아버지는 박해의 위험이 없다는 판정을 내리다니요. 같은 가톨릭 개종자고 같은 이란인이어서 똑같이 이란에서 배교죄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데. 미성년자인 아들보다 어른인 아버지가 박해의 위험도가 더 높고, 아들이 난민인정을 받은 작년보다 1년 후인 지금의 아버지 상황이 더 주목받는 상황인 건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인데, 같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불과 1년 만에 같은 사안에 대해, 정반대의 판정을 내리다니요.

인도주의를 짓밟고 공정성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법률까지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부정의한 판정. 포용과 존중을 배우려 했던 우리에게 배척과 편견의 독한 대답으로 던져진 판정.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 국민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짓밟아도 되는 것인지, 그런 사고가 일제가 타민족이라는 이유로 우리 민족을 유린했던 것을 정당화 한 생각, 주권을 잃어 난민과 같았던 우리 백성을 위안부로 징용으로 끌고 갔던 것을 합리화한 생각과 다른 생각일 수 있는지, 정말 다른 나라 사람에겐 어떤 부당한 일을 저질러도 다 묵인되는 것인지, 눈감을 수 있는 것인지, 이 불공정을 진정 그대로 두실 것인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을 나와 찾아간 기독교회관에서 선생님께서는 나이 드신 NCC 목사님 앞에서 끝내 눈물을 비치셨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위로하며 맞아주시는 목사님의 기도와 함께 먹었던 늦은 점심도 잠시의 따뜻함만 주었을 뿐, 우리가 겪는 슬픔을 다 밀어내지는 못했습니다. 민혁이와 아버님을 보내고 선생님과 헤어질 때까지 우리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지만, 다시 싸우자고 격려했지만, 농담도 하며 웃어보기도 했지만, 우리는 돌아오며 울었습니다. 집에 가서 울었습니다. 학원 가다가 울었습니다. 2019년 8월 8일은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민혁이가 울고 선생님이 울고 적어도 아주중이 운 날이니까요. 친구를 지키고 생명을 지키려 했던 작은 정신 하나가 꺾인 날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다짐합니다. 그리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힘이 많이 부족하다고, 그럼에도 끝까지 싸울 거라고. 그러니 누가 됐든 우리의 슬픔 곁에 서 함께 해 달라고. 어둠 속에 버려진 이들을 감싸는 빛의 길을 걷자고.

2019년 8월 12일

<아주중학교 졸업생>

박병훈(동일공고1년) 김성준(민족사관고1년) 송인우(배명고1년) 이규비(상산고1년) 윤명근(송파공고1년) 구건호 김아란 김예찬 박찬우 손세준 유정원 차인철 채혜린 추경식 최민교 황현(영동일고1년) 이윤규(자퇴 중) 이정현(잠신고1년) 박신예(잠실여고1년) 박지민 최현준(잠일고1년) 김지유 박찬희 안동하 이시헌 이시현(정신여고1년) 임하은(서울디자인고1년) 김태균(서울컨벤션고1년) 신성빈(한국조리과학고1년) 서성희(한대부고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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