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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학명은 일본 적송… 식물 이름도 주권 되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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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학명은 일본 적송… 식물 이름도 주권 되찾아야”

입력
2019.08.16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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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운동가 정홍규 신부 

30년 넘게 가톨릭 사제로 살아오면서 환경운동에 전념해 온 정홍규 신부는 “이젠 일본에 빼앗겼던 식물주권도 회복해야 될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심지훈 기자 sim@hankookilbo.com
30년 넘게 가톨릭 사제로 살아오면서 환경운동에 전념해 온 정홍규 신부는 “이젠 일본에 빼앗겼던 식물주권도 회복해야 될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심지훈 기자 sim@hankookilbo.com

“일제로부터 74년 전에 독립했지만 우린 아직도 ‘식물식민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식물주권을 회복할 때입니다.”

올해로 벌써 30년째다. 적지 않은 시간을 가톨릭 사제로 살아오면서 환경운동에 전념해 온 그는 더 이상 식물주권의 회복 시점을 늦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극일 분위기가 확산 중인 가운데 식물학계에서도 제대로 된 권리 찾기에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난 9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한 한옥정원카페에서 만난 정홍규(65·세례명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식물주권회복운동의 중요성을 이렇게 역설했다.

정 신부는 “우리 토종식물 학명은 상당수 일본어로 돼 있다”며 “말로는 우리 꽃, 우리 나무라지만 실제로는 일본 꽃, 일본 나무인 토종 식물에 나라를 되찾아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신부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제국주의 식물학자 나카이가 우리나라 식물 4만여 종을 일본으로 가져가 자신의 이름으로 등재했다. 금강초롱꽃은 조수의 이름으로 등재하기도 했다. 제주도 양치식물은 도쿄대 식물원에 다 모여 있다는 게 그의 한숨 섞인 설명이다.

정 신부는 “27세부터 10년간 함경도, 울릉도, 지리산, 금강산, 백두산, 한라산 등 조선팔도를 샅샅이 훑으며 채집활동을 벌였던 나카이는 당시 ‘식물사냥꾼’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이라며 “그가 일본으로 가져간 식물 표본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니, 채집지를 ‘한국’이 아닌 ‘아시아’로 모호하게 표기해 우리 식물 종이 다양하지 못하다거나 식물에 대한 학문적 탐구가 부족한 나라라는 인식을 세계에 심어놓았다”고 지적했다.

1917년 영국 식물분류학자 윌슨에 의해 우리 고유종으로 밝혀진 구상나무도 하마터면 나카이 이름으로 등재될 뻔했다. 나카이가 구상나무를 분비나무로 착각하는 바람에 학명에 ‘나카이’가 빠졌다는 것. 정 신부는 “우리 식물 학명에 나카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며 “노각나무, 라일락, 개나리, 회양목, 미선나무, 개양광나무 등 강제로 해외 이민 간 종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안타까워했다.

우리에게는 대대로 절개의 상징으로 인식돼 남다른 의미를 지닌 소나무도 학명은 라틴어로 돼 있지만, 영어명은 ‘재패니즈 레드 파인(Japanese Red Pine)’으로 돼 있다.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정 신부의 설명이다.

정 신부는 “학명은 국제식물명명규약에 의해 먼저 명명한 사람의 선취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바꿀 수 없지만 ‘일반명’은 1종의 식물에 다수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며 “식물이 분포하는 지역, 모양을 떠올릴 수 있는 단어, 식물의 특징적 색깔 등을 고려해 우리 식물들에 우리 이름을 달아줘 식물주권을 회복하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신부가 식물주권에 눈을 뜬 건 프랑스 신부 에밀 타케(1873~1952)의 영향이 크다. 최근 에세이집 ‘에밀 타케의 선물’을 펴낸 정 신부는 5년 전인 2014년 8월14일 우연히 대구 중구 남산동 옛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인근에 사는 주민으로부터 “1922년부터 1952년까지 대구에 살았던 타케 신부가 왕벚나무를 심었는데, 어느 해 여름 태풍이 와서 죽어가는 걸 우리 할아버지가 막걸리를 부어 살렸다”는 얘기를 듣고 그날 바로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 서신을 띄웠다.

정 신부는 그해 연말 파리외방전교회에서 보내온 사진 한 장과 프로필을 들고 타케 신부의 행적을 찾아 나섰다. 2015년 첫 번째 선교지인 마산과 부산, 진주부터 파고 들었다. 이어 타케 신부의 두 번째 선교지인 제주도와 말년을 보낸 대구까지 탐사했다. 정 신부는 그렇게 타케 신부의 궤적 맞추기에 4년을 보냈다.

“처음에는 타케 신부가 식물에 식견이 있는 사제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들여다보니 문외한이었어요. 선교 중 제주 생태의 아름다움에 빠져 식물학자가 된 분입니다. 우리 식물을 채집하고 표본으로 만들어 미국,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등지로 보내 세계에 알렸죠. 그 실물과 기록들이 세계 곳곳의 식물원과 대학에 남아 있습니다.”

정홍규 신부의 저서 '에밀 타케의 선물' 표지. 정홍규 신부 제공
정홍규 신부의 저서 '에밀 타케의 선물' 표지. 정홍규 신부 제공

정 신부는 저서 ‘에밀 타케의 선물’을 통해 타케 신부가 1898년 우리나라에 들어와 1952년 선종할 때까지 파란만장한 선교 여정을 다뤘다. 책에선 ‘일제강점기 식물 분류학자 타케’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정 신부의 신념은 확고했다. “국립수목원이 2016년 식물주권 회복 차원에서 일본어로 된 우리 식물을 영어로 바꿨지만 아직도 창씨개명 된 우리 식물이 허다합니다. 이젠 우리 꽃과 나무에 우리 이름을 달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30년 넘게 식물주권회복운동에 전념한 그가 가야할 길은 이미 정해진 듯 했다.

청도=글·사진 심지훈 기자 s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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