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청구권협정 예외 인정하면 샌프란시스코조약 원칙 흔들려… 미국이 우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 미국이 이에 항의하고 있는 일본 측 입장을 지지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양국 모두와 동맹 관계인 미국을 끌어들여 자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11일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이 강제징용 판결을 둘러싸고 일본의 법적 입장을 지지한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강제징용에 대한 손해배상을 포함, 대일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된 만큼,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협정 취지에 어긋나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일본 주장에 미국이 동조했다는 뜻이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뒤 미 국무부와 협의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외무성은 원고 측이 미국 소재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를 신청할 경우, 미 국무부가 ‘소송은 무효’라는 의견서를 미국 법원에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마이니치는 이와 관련, “미 국무부가 작년 말 일본 주장을 지지하는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미국이 일본 측 논리를 두둔하는 입장을 낸 배경에 대해 “미국이 한국 대법원의 판결로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예외’를 인정할 경우, 협정의 근간이 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의 ‘전쟁 청구권 포기’ 원칙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앞서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 일본군 포로로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미국인들이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미 국무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청구권을 포기했다”면서 자국민 원고들의 호소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원고 소송을 기각했다. 즉,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이 받아들여질 경우 또 다시 피해 미국인들의 소송이 빗발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미국도 우려하고 있다는 취지다.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 ‘미국의 이해를 얻고 있다’고 강조한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열린 미일 고위급 회담에 이어 이달 초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때에도 고노 다로 일본 외무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이 문제에 공감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마이니치는 일본 정부가 징용 판결과 관련한 원칙적 주장에서 미국의 이해를 얻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가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등 ‘청구권 협정 위반’ 상태의 시정을 계속 요구한다는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태평양전쟁 종전 후 패전국인 일본과 승전국인 연합국이 맺은 샌프란시스크 강화조약의 당사자가 되지 못한 한국은 일본과 옛 식민지 간 청구권 문제를 당사자 간 특별약정으로 처리한다고 규정한 이 조약(4조)에 근거,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서 청구권 문제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 문항을 놓고 한국 대법원은 작년 10월 “불법 식민지배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그런 해석이 협정 취지에 어긋나는 판결이어서 국제법 위반 상태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찌민ㆍ방콕=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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