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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수출규제는 일본의 실책이다

입력
2019.08.12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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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2일 도쿄 자민당사에서 참의원 선거 결과에 대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2일 도쿄 자민당사에서 참의원 선거 결과에 대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왜 아베 총리는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고 저렇게도 애쓸까. 깊은 불안감이 원인이다. 한 때 일본군이 짓밟았던 중국이 부상하는 모습에 일본은 두려움을 느낀다.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고, 일본을 도와줄 위치에 있는 한국과의 관계는 최악이다. 러시아도 일본의 공역을 수시로 침범한다......기댈 곳은 미국뿐이다.”

이것은 필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유력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의 백악관 출입기자 마이클 크롤리가 쓴 5월 24일자 기사의 일부다. 지금 일본의 전략적 고민은 중국의 부상에 꽂혀 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재집권하면서 ‘강한 일본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사회경제 혁신과 평화헌법 개정, 군사력 사용에 제한이 없는 정상국가를 공약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바탕으로 해양연대를 결성, 중국의 부상에 대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런데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 전략은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TPP를 거부하고 미일 안보조약이 불평등하다고 비판했다. 2018년 들어 한반도 상황도 급변했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미국이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면 한미일 안보협력과 인도ᆞ태평양전략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일본의 전략은 한 축이 무너진다.

일본은 편승으로 전략 변화를 시도했다.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2018년 10월에는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 양국 관계의 ‘새 시대’를 선언했다. 그래도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예측불가능하고 미일 동맹의 장래도 불확실하다. 헌법을 개정하고 ‘강한 일본’을 되찾겠다고 한 아베 총리로서는 돌파구 마련이 절실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쉽다. 이해가 어려운 것은, 왜 이 상황에서, 더구나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선언한 G20 직후, 아베 내각이 한국에 대한 핵심 소재 수출규제를 결정했을까 하는 점이다.

일본의 국익 관점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첫째, 수출규제는 누구보다 일본에게 손해다. 자유무역질서에 반한다. 2차 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1964년 올림픽을 개최하고, 1989년 이시하라 신타로 당시 교통장관이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낸 것은 자유무역질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는 모든 국가가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경계하고, 글로벌 가치사슬 내에서 강ㆍ약점을 점검할 것이다. 자유무역은 위축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일본의 대중국 연대 구축이 더 힘들어진다. 일본이 인도ᆞ태평양전략을 적극 추진하지만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호주 인도 등 역내 주요국들의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중국의 부상에 대한 균형추로서 일본을 대해오던 ASEAN 국가들도 일본의 의도를 경계할 것이다.

셋째,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할 한국과의 관계도 관리가 더 어렵게 됐다. 과거사문제 발생의 근원이 강압이다. 지금 일본은 다시 강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고 있다.

결국 대중 포위전략이 뜻대로 먹혀들지 않고, ‘강한 일본’ 실현이 늦어지는 데서 오는 좌절과 불안이 정치공학적 실책으로 이어졌다고 봐야 정확할 듯하다.

차분하지만 결연한 대응이 중요하다. 첫째, 이번 사태를 민족자존의 입장에서 과거사문제 극복의계기로 삼는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각각 해법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식민지배를 수긍할 수 없다는 국민감정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법률적 문제 제기에 일본이 힘으로 대응한 순간, 우리의 도덕적 우위는 결정되었다. 앞으로 일본의 경제적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한반도 평화구축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북미 관계 개선이 관건이다. 셋째, 우리 외교안보정책의 근간인 한미 동맹을 유지ㆍ강화한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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