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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 “박막례 할머니처럼 재밌는 분도 있어… 마주할 기회 늘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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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 “박막례 할머니처럼 재밌는 분도 있어… 마주할 기회 늘려야”

입력
2019.08.20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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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김경진기자

<17> 노인

“요즘 박막례 할머니를 보며 내가 알지 못했던 노인의 모습을 알아가고 있어”

청년으로서 노년의 모습을 상상해봤습니다. 지금 실존하는 사람들의 삶이자, 미래의 내 삶이지만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노인과 관계 맺고, 교류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빈곤ㆍ고독사 등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의 대상으로 노인을 만났고, 세대갈등의 한 축에서 노인을 대척점에 두고 봐왔습니다. 젊은이에게 노인은 낯설거나, 어렵거나,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그 동안 노인이라는 집단을 분류해 단편적인 판단을 덧씌워 왔던 건 아닐까요. 우리는 늙지 않을 것처럼 말이에요. 한국일보 인턴들은 ‘노인 문제’ 속의 노인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노인을 만나 서로를 배워갈 수 있길 바란다며 입을 모았습니다.

 ◇청년과 노인의 갈등을 들여다보면 

카페인= 난 지하철에서 어르신만 보면 눈치를 봤어. 나도 피곤하고 힘들지만 어른에겐 당연히 자리를 양보해야 된다는 인식 때문에 앉아있을 땐 벌떡 일어나고, 서있을 때도 ‘누가 빨리 좀 일어났으면’ 하며 안절부절 했어. 자리싸움을 직접 본 적도 있고, 자리 양보를 두고 폭언ㆍ폭행이 오갔다는 목격담들을 인터넷에서 읽고 노인이 무서워졌던 거 같아. 나도 그런 싸움에 휘말릴까봐 걱정했어. 그런데 내가 노인을 한 명의 개인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으로 먼저 인식한다는 걸 깨달았어. 노인은 ‘흑인’, ‘여성’, ‘젊은이’처럼 하나의 다른 종(種)으로 여겨진다는 글을 읽었는데, 단번에 이해되더라. 노인을 타자화하며 나와는 다른 집단으로 쉽게 치부했던 순간들을 반성하게 됐어.

삼다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 열심히 광화문에 나갔는데, 그때 태극기 집회에서 본 어르신들을 이해하기 어려웠어. 그냥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보기는 힘들었거든. 근데 태극기 집회에 나오시는 분들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한 기사를 보고 조금 생각이 바뀌었어. 전쟁과 분단을 겪은 세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세대는 그렇지 않은 우리와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게 됐지. 그리고 세상이 굉장히 빨리 변한 것도 사실이잖아. 집회는 인적 관계망이 줄어든 노인들이 모임을 하는 장소이기도 했고, 쌓아왔던 박탈감과 울분을 분출하는 공간이기도 했어. 단순하게 그분들을 이해할 수 없는 집단으로 바라보고, 조롱만 한다면 노인들이 더 소외되는 결과만 낳을 거야.

블랙펄= 어르신들과는 대화가 안 된다고 느꼈던 적이 많아. 갑자기 ‘버럭’ 화를 내신다거나, 권위적인 의식을 드러내실 때마다 노인을 피하고 싶어졌어. TV에서 보니 노인들도 젊은이들이 무시하고 냉대하기 일쑤라며 대화가 힘들다고 하시더라. 어르신과 얘기하다 부딪힌 경험을 돌아보니, 서로의 삶이 어떤지 모른다는 게 문제 같았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가치관이 형성됐는지도 모르고, 이해하기도 어려우니 말이 안 통하는 거지. 그런 걸 배울 기회가 없었잖아. 그리고 한국의 연공서열ㆍ수직 문화도 노인과의 대화를 어렵게 만들어.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소통을 하고 싶은데, 어르신과 대화하려면 내가 아이가 되어야 하는 느낌이야.

 ◇‘요즘 노인들’의 삶은 젊은이와 달라 

땡모반= 기술 발전으로 세상이 편해졌다는데, 젊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 수 있어. 나는 기차 안에 서서 가는 노인들이 많다는 기사를 봤어. 요즘 대부분 웹페이지나 스마트폰 앱으로 기차 좌석을 예매하잖아. 그걸 사용하기 힘든 노인들은 현장에서 티켓을 사야 해. 몇 시간 전에 매표소에 와서 예매하지 못하면 입석으로 표를 사야 되는 거야. 스마트폰 예매가 적극적으로 도입되면서 노인들이 원래 앉을 수 있던 자리에서 밀려난 거지.

블랙펄= 영화관에 갔는데, 키오스크(무인 자동화 단말기)로 팝콘을 주문 받고 있었어. 한 노부부가 결제하는 법을 몰라 주문을 못하고 계시는 걸 봤어. 5분 정도 지켜보다가, ‘도와드릴까요?’ 여쭤보고 알려 드렸어. 사용법을 안내해 줄 직원도 없고 기계만 덩그러니 설치돼있었거든. 뒤에 줄 선 사람들은 짜증을 내고 있었지. 노부부는 당황하신 것처럼 보였어. 요즘 키오스크로만 주문을 받는 매장이 늘어나는데, ‘손님’의 범주에 기계를 못 다루는 사람은 포함시키지 않는 거냐고 묻고 싶어져. 똑같이 돈 쓰러 갔는데 환대 받는 경험이 아니라 불편을 겪게 되잖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고, 시간이 지체되면서 폐를 끼친다는 기분마저 들 수도 있어.

백세거북= 현재의 노년 세대는 부모를 부양한 마지막 세대, 자식으로부터 부양 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고 불린대. ‘이중 부양’을 하다 노후자금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분들이 많아.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야. 노인의 절반이 빈곤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 행복한 노인의 삶은 상상이 잘 안돼. ‘나도 저런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노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미디어에 노출되긴 해. 그런데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들이더라고.

카페인= 요즘 노인들에게 친구가 줄어들고 있대. 한 설문조사에서 친한 친구나 이웃이 있다고 답한 노인이 절반에 불과했어. 노인 간 소통의 장이었던 경로당 이용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지. 관계가 단절되며 우울증을 겪는 노인이 많아. 한 달에 20만원 이하로 생활하는 노인에게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 물으니, '외로움'이라고 답했대. 노인들이 체감하기엔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사회적 고립감이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거야. 고립된 노인들이 사회로 나올 수 있게 하는 적극적인 복지정책이 필요해.

 ◇세대 간 교류하며 서로를 배워야 

땡모반= 특정한 장소가 아니면 우리가 노인을 만나기 어려운 것도 노인 소외의 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유럽에 갔을 때, 맥줏집에서 노인과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광경을 자주 봤어. 나는 낯설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익숙해 보였어. 노인들이 고립되지 않고 이곳 저곳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해. 다양한 세대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문화도 정착되길 바라. 노인과 청년이 더 자주, 더 많은 곳에서 만났으면 좋겠어. 마주칠 기회가 없으니 갈등이 더 심화되고 오해도 쌓이는 것 같아. 서로에 대해 알아갈 기회가 필요해.

칠곡요다= 나는 무료 영상 제작 교실에 갔다가, 강의실에 가득한 어르신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 그분들도 나를 빤히 쳐다보시면서 낯설어 하셨어. 처음엔 내가 ‘이방인’이 된 것 같아서 수강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몇 번 나가보니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어. 어색해하는 나와 달리 그곳의 어르신들은 ‘사회생활 만렙(최대 레벨)’이셨어. 뛰어난 스킬로 대화를 유도하시는데, 친하지 않은 사람과 개인적인 얘길 안 하는 편인 내가 이런저런 얘길 하면서 웃고 있었어. 그분들은 지역사회 관련 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시는 분들이더라고. 지역의 훈훈한 소식이나, 개선돼야 할 문제를 영상으로 만들어 방송국에 송출하신다고 했어. 그분들을 보며 시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어. 노인이 돌봄을 제공받는 존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사회에 참여하는 존재로 살 수 있는 기회가 보장돼야 해.

삼다수= 몇 년 전에 경기 성남시에서 진행했던 ‘동네 한 바퀴 in 성남’이라는 커뮤니티 맵핑 프로젝트가 생각나. 성남에서 오래 살아오신 어르신들은 지역 사회의 문제점을 잘 알고 계시지만, 개선을 실현할 구체적인 기술을 생각하기 어려워하셨어. 시니어와 주니어가 한 조가 돼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지도를 만들었어. 주니어들은 처음엔 시니어들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얘기를 나눠보니 생각보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고 했어. 어르신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다고 말했지. 시니어들은, 요즘 젊은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듣고 배웠다면서, 자식을 키우면서도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고 했어. 이렇게 서로의 다른 입장을 알아보고, 이해해보는 계기를 만들면서 갈등을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노인에게도 일자리가 중요 

백세거북= 노인의 빈곤, 소외 문제를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이 노인에게 일거리가 생기는 것이라 생각해. 일거리가 있어야 노인들이 사회로 나오고, 소득수준을 높일 뿐 아니라 건강한 삶을 만들어줘. 한 연구에서는 일하는 노인보다 무직 노인이 평균 85만원 의료비를 더 지출하고, 우울 수준이 두 배 높다고 나타났어. 노인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해.

칠곡요다= 일자리가 부족하니까, 노인 일자리와 청년 일자리가 제로섬 게임처럼 그려지곤 하잖아. 그런 식의 접근은 더 좋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 노인도 생산자나 소비자로서 경제 주체가 될 수 있어. 청년만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노인도 그럴 수 있지. 예를 들어 은퇴한 시니어가 창업한다면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어. 당장은 해답이 안 보이더라도 청년이든 노인이든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야지, 노인이 청년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단 식으로 접근하면 안 돼.

카페인= 사회적 교류의 장으로서 노인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해. 그런데 노인들이 나이 들어서까지도 계속 일해야 하는 상황이 옳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 빈곤이 해소된다면, 건강이 악화된 노인이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지 않아도 돼. OECD 국가 중 상대적 빈곤율이 가장 낮은 덴마크에서는 75세 이상 인구의 고용률이 0%대래. 노인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야. 한국에서는 노인들이 노후를 준비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복지가 중요하게 인식된 지도 얼마 안 됐어. 기초연금 같은 노인의 소득 보장체계를 더 강화하는 게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해. 노인 일자리 정책은 이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봐.

 ◇우리는 모두 늙어가니까 

백세거북= 내가 노인이 된 모습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어쩌면 노인이 된다는 걸 상상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주변에 늙는 게 싫어서 일찍 죽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어. 우리 사회에서 늙는다는 건 부정적으로 인식되잖아. 자본주의의 영향이 크대. 노화되면 생산력이 떨어지고 비용은 많이 드는 존재가 되니 쓸모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거지. 복지정책만 봐도 노인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져 왔어. 이제 그런 인식을 좀 벗어나야 해. 유럽에서는 노인의 사회 참여가 1명당 최대 연 3만유로(4,000만원) 경제효과가 있다고 해. 노인을 우리 사회의 적극적인 주체로 끌어와야 할 필요가 있어. 한편으론 경제적인 논리를 벗어나려는 노력도 해야 돼. ‘쓸모’를 따지는 개념을 벗어나 동등한 시민으로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어야 해. 우리 모두 늙어가는 사람들이잖아.

땡모반= 요즘 박막례 할머니의 유튜브를 보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노인의 새로운 모습들을 배워가는 중이야. 특유의 에너지를 가진 유쾌한 박막례 할머니를 보면서 노인에 대해 갖고 있던 막연한 이미지가 깨졌어. 그동안 나도 모르게 노인의 특성을 한정해 뒀던 것 같아. 여성학자 정희진은 “노인을 정의하지 않을 때, 노인에 대한 차별이 없어진다”고 말했어. 미디어에서 노인의 다양한 모습이 보이면 좋겠어.

블랙펄= 노인들이 잘 사는 모습을 주변에서 많이 보고 싶어. 그들을 보며 내 노년을 상상할 수 있었으면 해. 교환학생으로 덴마크에 갔을 때, 노부부의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어.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노년의 삶은 어떤지 들었던 게 기억에 남아. 한국에 살았던 동안에는 노인이 대중교통, 길거리 등에서 스쳐 지나는 사람들일 뿐이었던 것 같아. 빈곤, 외로움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렸으면 좋겠고, 그들과 가까이에서 관계 맺으며 살고 싶어. 그래야 나도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고, 노년에도 삶을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정리= 김의정, 홍윤기 인턴기자

참여= 권현지, 김의정, 정선아, 조희연, 주소현, 홍윤기 인턴기자

※기성세대는 ‘나약한 세대’라 손가락질하지만 스스로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길을 가는 세대’라 부르며 뿌듯해 하죠.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않은 앞날을 마주해 비장하면서도 유쾌한 이들. 우리가 어렴풋이 떠올리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ㆍ198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이미지가 아닐까요. 한국일보는 밀레니얼 세대가 지닌 잠재력, 그들이 미처 어필하지 못한 속내를 이해하고자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본보 인턴기자들의 방담(放談) ‘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을 연재(매주 화요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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