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여제’라는 수식어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박인비(31ㆍKB금융그룹). 골프 역사상 첫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19승을 달성한 살아있는 전설이지만, 그 이면에는 샷 하나에 웃기도, 울기도 하며 늘 번민하는 한 명의 인간이 있었다.
박인비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 참가하기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 오면 외롭지 않아 좋다”는 박인비는 9일 제주 오라 컨트리클럽(파72ㆍ6666야드)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은퇴 시기에 대한 고민과 함께 골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박인비는 은퇴 시기를 묻는 질문에 “사실 오래 전부터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정확히 언제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매년, 심지어 매주 마음이 바뀌는 데다 번복할 수 없는 것이기에 조심스럽다”면서도 “아직까지 골프가 즐겁고 내 실력으로 세계투어에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인비는 골프가 아닌, 골프를 하는 자신이 좋기에 골프 선수로서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골프만 보면 기쁨보다 스트레스를 주는 애증관계와 같아 좋을 때도, 싫을 때도 있었지만 골프 덕에 많은 것을 이뤘고, 내 삶의 소중한 부분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역경을 버티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으로 남편 남기협(38) 코치를 꼽은 박인비는 “남편과 많은 우승을 이뤘고, 그를 만나 한층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하루 빨리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싶지만 투어를 함께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아직 여유 있는 30대 초반이기에 조금 더 골프에 집중하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골프 여제’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다는 박인비는 “그냥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며 멋쩍게 웃었지만, 실력은 ‘골프 여제’라 부르기에 손색없었다. 박인비는 이날 버디 6개와 보기 2개를 묶어 4언더파 68타를 기록, 선두 이정민(27ㆍ한화큐셀)에 4타 뒤진 공동 3위로 첫 날 경기를 마쳤다.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나 멋진 경기력이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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