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TAC 필름 국산화에 성공한 효성화학
현재 디스플레이 산업의 최강은 한국이지만, 그에 앞선 종주국이 일본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TV 등 완제품 제작에서부터 디스플레이를 만드는데 들어가야 할 핵심 부품과 소재까지, 일본 기업들은 그들만의 완성도 높은 기술로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 해왔다. TV는 물론 디스플레이 패널과 편광판까지 하나 둘씩 ‘국산화’의 길을 뚜벅뚜벅 걷기 시작한 이웃나라 한국 기업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TAC필름은 TV나 노트북, 휴대폰 등에 사용되는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 부품, 편광판을 보호해주는 핵심 소재 중 하나다. 투과된 빛을 우리 눈에 보이는 색과 영상을 만들어주는 편광판에는 얇은 막으로 돼 있는 편광 소자가 주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편광소자는 막 자체가 얇다 보니 외부 충격 등에 취약한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걸 보호해주는 게 바로 튼튼하면서도 광학적 기능이 뛰어난 TAC필름이다.
효성화학은 2009년 울산에 LCD용 TAC필름 공장을 완공, 국내 기업 중 최초로 필름 양산에 들어갔다. 2013년부터는 충북 옥산에 있는 2호기 공장을 가동, 현재 연간 총 1억1,000만㎥를 생산하고 있다. 물론 효성화학은 국내 유일의 TAC필름 생산 업체이기도 하다.
TAC필름의 국산화 과정은 길기도 힘든 과정이었다. 100% 전량 일본에서 수입을 해야 했던 TAC필름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겠다’며 사업 검토에 들어간 시점이 2004년. 그로부터 양산까지 걸린 시간만 5년이 걸렸다.
일단 효성화학에는 휘발유의 일종인 솔벤트를 정교하게 이용해 원료를 녹인 뒤 TAC필름을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일본의 후지필름이나 코니카 정도만이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기술 국산화’에 나서는 효성화학에 기술 노하우를 알려줄 리는 만무했다.
효성화학은 파산 상태였던 독일 아그파에 눈을 돌렸다. 사진용 필름을 제작하던 회사인 만큼 후지 등과 같이 TAC필름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공장 인수와 함께 기술을 가진 인력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공장 설비를 구하는 것도 난관이었다. 효성화학의 한 고위 임원은 “설비도 당연히 일본 기업들이 만들어 팔고 있었는데, 그들은 애초부터 설비를 우리에게 팔 생각이 없었다”면서 “주요 설비 부품들을 따로 따로 구해서 조립을 하는 식으로 설비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일본이 주도한 시장의 벽도 생각보다 단단하고 높았다. 시장에는 디스플레이 종주국을 자처하는 일본이 TAC필름과 같은 핵심 소재까지 국산화에 성공한 한국 기업을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효성화학 관계자는 “일본 기업에서 고객 회사들에게 물밑으로 효성 제품을 사지 말라는 텃세를 부린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며 “판매가 부진할 수밖에 없었고 계속 사업을 해나가야 하는지 회사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석래 회장(현재 명예회장)의 생각은 확고했다. 사업이 어렵고 계속 적자를 면하지 못했지만 조 회장이 직접 공장 현장을 다니면서 기술팀이나 공장 쪽 인력들과 토론하며 독려했다. 조현준 현 회장 역시 신소재인 TAC 필름 관련 “우리의 고객사인 편광판 업체를 넘어 고객의 고객인 패널업체의 목소리에까지 귀를 기울여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며 기술자들을 독려하고 있다
양산 이후 10년이 지난 현재, 시장에서는 효성화학의 제품을 ‘일본과 동등한 수준의 기술력과 품질’로 평가한다. 삼성이나 LG 등 주요기업에 납품하고 있으며 디스플레이 업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도 진출에 성공했다. “국내 시장 점유율 기준으로만 봐도 TAC 소재 필름 분야에서 0%에서 시작해 이제는 45%까지 성장을 했습니다. 언제까지 일본기업들이 최정상에 서 있을 수만은 없을 겁니다.“ 효성화학의 자신감이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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