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상식한 아베 총리의 수출규제 사태로 인한 한국과 일본 간 갈등이 쉽게 마무리될 것 같지 않다. 수도꼭지를 쥐고서 한국을 요리하려는 아베의 복심은 ‘반일본’이 아닌 ‘반아베’로 나아갈 만큼 성숙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시민의식이 작용하는 한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위기를 국내적으로는 대한민국 사회 발전의 기회로, 그리고 국외적으로는 인류 보편적 가치의 상승 기회로 잘 활용해야 한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던 2016년 2월 초에 도쿄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동아시아 근대사를 연구하는 교수 한 분을 만나 한국과 일본의 미래를 놓고 2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분은 한일 양국이 미국과 중국, EU 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계의 정치, 경제 등 불확실한 정세와 관련하여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래도 한국은 일본에 비해 희망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나는 당시 박근혜 정부로 인한 민주주의의 퇴보 현상과 함께, 곧 4월에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의 3분의 2 득표를 예상하는 압승적 분위기에 대한 한국 실정을 얘기하면서 한국도 일정 기간 희망이 없음을 피력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그 분은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얘기했다. 일본의 경우 첫째, 초고령사회로 인한 국가 전반적인 활력의 상실, 둘째, 일본 정치의 낙후성, 특히 아베 정부의 독단적인 예측 불허의 패권주의식 국가 운영, 셋째, 청년의 외국으로의 진출 약화 경향, 그리고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 등을 근거로 일본은 미래가 거의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미래에 희망이 있는 근거로 첫째, 비록 저출산고령사회가 심각하게 전개되지만 아직도 준비할 여유가 어느 정도 있다는 점, 둘째, 한국은 시민운동의 경험이 누적돼 있어 역동적인 사회라는 점을 지적했다. 3ㆍ1운동, 4ㆍ19혁명, 6월 항쟁 등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체험이 내재화돼 있어 향후에는 더욱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며, 4월 선거에서 여당이 질 가능성이 있음을 조심스럽게 예견했다.(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에서는 야당이 이길 것이라고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결과가 그대로 나타났다.) 셋째, 한국은 북한이 있어 남북관계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면 굉장한 남북 시너지 효과로 인해 일본을 금방 추월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물론 지진 등 자연재해의 불안이 한국에서는 거의 없음도 지적했다. 마지막에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과 약탈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 없음은 두고두고 국제관계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했다.
이번 아베의 수출규제 사태 이후 정부는 8월 2일에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종합대책’과 5일 ‘소재ㆍ부품ㆍ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내어 놓았다. 전자에서는 단기적으로 추경을 통해 피해 기업 등을 지원하고, 장기적으로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책을 추진할 것을 제시했다. 그리고 후자에서는 100대 핵심 전략 품목의 조기 공급 안정화 대책과 소재ㆍ부품ㆍ장비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책을 포함시켰다. 여기에는 예산ㆍ세제ㆍ금융지원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확 바꾸는 일이다. 일찍이 슘페터가 얘기한 대로 낡은 것은 파괴하고 새로운 것은 계속 창조하면서 끊임없이 경제구조를 혁신해 가는 창조적 파괴를 해야 한다. 창조적 파괴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 동안 압축경제성장의 체제를 사람 중심의 혁신적 포용국가로 바꾸는 데 이번 위기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위기일수록 급박하며, 위기는 창조적 파괴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위기를 잘 활용하는 지도자는 그래서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다.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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