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본다, 고전] 한과 슬픔을 노래한 김소월의 시는 모던했다
<13> 김소월 ‘진달래꽃’
여기, 한 명의 시인이 있다. 그(또는 그의 시)를 봉지에 담긴 빵이라고 상상해 보자. 그를 이루는 성분을 상상해 보자. 양질의 통찰력 500g, 시시 때때로 변하는 기분 한 줌, 음악성 열 덩어리, 고매한 사상 다섯 송이, 땀 스무 방울, 한량기질 한 됫박, 귀기어림 다섯 채, 절대미감 한 스푼, 좋은 눈 한 쌍, 언어감각 120%! 여기에 소량의 낭만과 극소량의 청승을 가미하면? 대중성까지 획득한다! 바로 시인 김소월(1902~1934)이 되겠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히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안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개여울’ㆍ165쪽)
처음 이 시를 노래로 들은 순간을 기억한다. 어릴 때였다. 마음이 개여울을 따라 훌훌 풀려, 어딘가로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이유도 모른 채, 숨어서 흐느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좋은 시는 사람의 심정을 호미처럼 파고들어, 헤쳐 놓는다는 것을 모르던 때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안노라시던”, 이 대목에서 놀랐다. 가는 것과 아주 가는 것의 차이, 그 무게의 다름, 슬픔의 미묘한 격차를 감지했던가. 김소월의 시를 읽으면 시가 본래 노래와 한 몸이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운율과 음수율의 얘기만은 아니다. 시는 노래라지만 운율놀이는 아니다. 시는 슬픔을 담는다지만 철철 넘치는 헤픈 서정은 아니다. 다만 사랑을 못 잊어 괴로워하는 여자를 두고 이렇게 말(言)을 풀어주는 일이다.
“눈들에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홀목숨은 못살때러라./ 눈풀리는 가지에 당치마귀로/ 젊은 계집 목매고 달릴 때러라.” (‘비단안개’ㆍ70쪽)
상상해 보라.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안개에 눈송이들 엉겨 붙은 겨울 날, “그리워 미친날”에, 젊은 여자가 당치마귀(치마끈)를 나뭇가지에 걸어 목매다는 풍경을. 소월의 시에는 냉혹한 설움과 귀기어림이 있다. 서늘해서 울음이 쏙 들어가는 지점이다. 죽음이나 슬픔, 그리움 따위가 그의 귀기어림으로 공중에서 차게 얼어붙을 것 같다.
소월은 그리움에 언제나 극소량의 ‘원망’이 들어있음을 알고 썼다. 그냥은 알 수 없고, 이불을 들추면 그제야 드러나는 감정. 숨어있는 ‘한’에 정통했다. 한은 대상을 향한 부정적 감정에서 오는 게 아니다. 차마 미워할 수 없고, 여전히 그쪽으로 몸이 향할 때 품는 감정이다. 이런 구절을 보자.
“바드득 이를 갈고/ 죽어볼까요/ 창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 눈물은 새우잠의/ 팔굽 벼개요/ 봄꿩은 잠이 없어/ 밤에 와 운다”(‘원앙침’ㆍ174쪽)
‘진달래꽃’은 1925년, 스물넷의 소월이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이다. 총 127편의 시가 담겨있다. 오래 걸려도 좋고, 오래 걸리지 않아도 좋다. 끝까지 한 번 읽어봐야 한다. 우리가 아는 시, 우리가 부르던 노래, 우리가 살면서 품은 소소한 설움들을 새로 만날 수 있다. 20대 때는 소월의 시가 낡고 촌스럽다고 오해했고, 30대 때는 ‘먼 옛날 정서’라고 오해했다. 무지해서 그랬다. 정색하고, ‘진달래꽃’을 다시 읽으니 놀라운 데가 있다. 한시(漢詩)와 창가(唱歌)와 신체시만 있던 시절 소월의 시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모던한 시였을 것이다. 소월이 노래한 한·슬픔·어둠은 한국에서 자란 이들의 영(靈)에 정서적 DNA로 유전되고 있다. 우리에게 소월이 있다는 것은 이런 시인이 있다는 것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이다.
“나쁜 일까지도 생의 노력(努力)”이라고 노래한 소월은, 1934년 서른셋의 나이에 술과 함께 아편을 삼키고 이튿날 죽은 채 발견됐다.
박연준 시인
진달래꽃
김소월 지음, 김선학 엮음
작가세계 발행ㆍ256쪽ㆍ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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