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열은 “영화 ‘봉오동 전투’에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며 “쉽게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인데 내게 기회가 주어져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쇼박스 제공

한때 소처럼 일한다고 ‘소준열’이라 불렸다. 요즘엔 국사책을 찢고 나온 남자 같다고 해서 ‘국찢남’이란다. 배우 류준열(33)이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새로 얻은 별명이다.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한 류준열은 “원래 그곳에 있었던 사람 같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기쁘다”며 “국찢남이란 말이 내게는 엄청난 극찬이나 다름없다”고 수줍게 웃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로 유인해 섬멸한 실제 역사를 다룬다.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한일 간 정치적 갈등이 고조된 시국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다. 7일 개봉 첫 날에만 33만명이 관람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류준열은 뛰어난 사격 실력과 빠른 발로 독립군을 이끄는 분대장 이장하를 연기한다. 출신과 배경이 다양한 독립군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정규 군사 훈련을 받은 인물이다. 류준열은 “시나리오에 적혀 있던 ‘청명한 눈을 가진 사내’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했다. “이장하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소중한 사람을 잃고도 슬픔을 참아 내죠. 개인의 감정보다는 시대의 요구, 즉 나라를 되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요.”

류준열은 명사수 이장하를 연기하기 위해 촬영을 앞두고 사격을 맹훈련했다. 쇼박스 제공

대체 나라 잃은 서러움이란 무얼까. 역사로는 배웠지만, 경험으로 알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다. 류준열은 “나라면 어땠을까 자문했을 때 ‘당연히 싸워야지’라고 자신 있게 결론 내리기 어려웠다”고 했다. 고민 끝에 찾은 답은 ‘어머니 같이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감정이었다. 그는 “공감할 수 있는 감정에서 출발하면 관객들도 독립군의 심정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류준열은 관객을 봉오동 골짜기로 인도하기까지 적잖이 번민했다. 이장하가 다른 캐릭터들과 결이 달라서 겉돌지는 않는지, 혹여 너무 딱딱해서 인간미 없어 보이진 않는지. 함께 연기한 유해진과 조우진이 그의 속내를 읽었던 모양이다. “저 애는 우리랑 각이 달라” “넌 여전히 안 웃는구나, 웃을 때 근사한데”라며 이장하를 설명해 주는 즉흥 대사들을 스윽 집어넣곤 했다. 류준열은 “선배들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며 “이렇게 캐릭터를 완성해 가는 것이구나 새롭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봉오동에 다다르기까지 독립군은 무수한 게릴라전을 치른다. 배우들은 수개월간 전국의 산과 계곡을 누비며 전투 장면을 찍었다. 그 치열함은 포스터가 증명한다. 악천후 속에 전투 장면 촬영을 마친 뒤 가볍게 기념으로 남긴 출연진 단체 사진이 포스터에 실렸다. 실제 국사책 자료사진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 나온, 그래서 ‘국찢남’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킨 바로 그 사진이다.

고된 촬영을 마치고 찍은 기념사진이 포스터에 실려 배우들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쇼박스 제공

연출이 1%도 가미되지 않았는데 사진 속 표정들이 사뭇 비장하다. 아마도 영화 촬영 내내 그러했을 것이다. 류준열은 동굴 속 대화 장면을 특히 뭉클하게 떠올렸다. 전국 각지에서 온 독립군들이 제각각 사투리로 이야기 나누며 감자를 나눠 먹는 장면이다. “독립군도 한 인간이기에 전투를 하지 않을 때는 밥도 먹고 잠도 잤을 텐데, 그들이 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생활했겠구나 싶어서 기분이 묘했어요. 저는 촬영이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안락한 집으로 퇴근하잖아요. 자신이 아닌 나라를 위해서 그런 고생을 견뎠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류준열은 “‘봉오동 전투’는 ‘기록’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 있다”고 짚었다. 그래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하고 영광스럽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일본군 대사 중에 ‘독립군들의 승리가 기록으로 남아선 안된다’고 하는 내용이 있어요. 숫자로밖에 기억되지 못한 독립군들의 희생과 노력을 잊고 지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영화로 다시금 기록되고, 기억됐으면 합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6)로 주목받은 이후 영화 ‘침묵’ ‘택시운전사’ ‘더 킹’(2017) ‘리틀 포레스트’ ‘독전’(2018) 등 많은 작품을 누볐고, 올해는 ‘뺑반’과 ‘돈’에 이어 ‘봉오동 전투’까지 3편을 선보였다. 그는 이 영화로 얻은 게 많은 듯했다. “대학 시절 수업에서 ‘배우는 시대를 반영하는 얼굴’이라고 배웠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배우 인생에 나침반이 될 것 같아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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