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8일 한국에 수출하는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 이후 처음으로 관련 제품 1건(포토레지스트)에 대해 수출허가를 부여했다. 지난달 4일 시행된 한국을 겨냥한 경제보복 이후 한 달 남짓 만에 나온 첫 허가이지만,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 제외 등으로 한국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가중된 상황에서 일본 측의 기류 변화로 판단하기엔 이르다. 현 상황에선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금수조치가 아니다”라는 일본 주장의 근거를 마련해 두기 위한 상징적 조치라는 측면이 큰 탓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경제산업성이 한국에 수출하는 포토레지스트(감광액) 1건의 수출을 승인한 것과 관련해 “엄정한 심사를 거쳐 안보상 우려가 없는 거래임을 확인하고 수출허가를 부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치는 반복해서 설명한 것처럼 금수조치가 아니다”라며 “정당한 거래에는 자의적인 운용을 하지 않고 허가를 내주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장관도 “통상적으로 개별(허가) 케이스는 공표하지 않는다”면서도 “한국 정부가 ‘금수조치’라고 하는 부당한 비판을 하고 있어 예외적으로 공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겨냥했다기 보다는 수출신청 절차상 문제가 없으면 수출허가를 내줄 수 있다는 자국의 입장을 제3국에 알리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지난달 세계무역기구(WTO)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국제무대에서 일본 측 조치의 부당함을 적극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까다로워진 수출절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자국 수출기업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불화수소 수출업체인 모리타(森田)화학공업은 “수속에 필요한 작업이 증가해 현장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고, 포토레지스트 수출업체인 도쿄오카(應化)공업은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반도체 생산에 여러 회사가 관계돼 있어 실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세코 장관은 “3개 품목 이외에도 (수출관리상의) 부적절한 사안이 나오면 철저한 재발방지책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이에 아사히(朝日)신문은 “제3탄의 규제 강화를 시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일본 정부가 근거 제시 없이 ‘부적절한 사안’을 명분 삼아 언제든지 한국에 대한 수출허가 절차를 까다롭게 할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않은 것이다. 1건의 수출허가만으로 일본 측 기류가 바뀌었다거나 한국 기업들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감소했다고 속단할 수 없는 이유다. 일본 정부는 이날 1건의 수출허가를 공개했지만, 지난달 4일 이후 총 몇 건의 수출신청이 접수됐는지 등 구체적인 통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은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해 글로벌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점을 알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조치 철회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수출신청에 대해 허가를 빨리 내주는 사례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기류 변화라고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장 광복절 경축사, 독도 방어훈련,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연장 여부 등에 따라 일본 측 반응이 급변할 수 있어서다.
다만 한일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확전을 자제했다는 점에서 양측 간 물밑대화를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향후 추가적인 수출허가가 나올 경우 한일이 서로에 대한 대응 수위를 조절하면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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