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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끝날 줄 알면서도 일본은 왜 진주만을 공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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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끝날 줄 알면서도 일본은 왜 진주만을 공격했나

입력
2019.08.08 15:14
수정
2019.08.08 21:3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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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천황의 항복 발표를 들은 일본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글항아리제공
1945년 8월 15일 천황의 항복 발표를 들은 일본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글항아리제공

‘일본인들은 형이상학적인 직관과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충동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철학이 야수의 모습을 하고 야수성은 철학의 모습을 했다. 반란자들이 자행한 암살과 유혈극은 이상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동양을 위해 동양을 구하려고 중국을 쳐들어간 군인들의 행위는 난징에서 수많은 같은 동양인에 대한 살육으로 끝났다. (중략) 그들은 성실했지만 죄에 대한 개념은 없었다. 그들은 동정심은 있되 인간애는 없었고, 씨족은 있어도 사회는 없었다.’

세계적인 전쟁사학자 존 톨런드(1912~2004)가 태평양전쟁의 전모를 총체적으로 다룬 책 ‘일본제국 패망사’에서 일본인의 특징을 분석한 대목 중 하나다. 서구인의 눈으로 본 일본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덩어리였다. 스스로 패망의 길을 걷게 했던 태평양전쟁만 봐도 그렇다. 캘리포니아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나라가 무엇 때문에 진주만을 공격했고 열 배는 더 강한 적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자살행위를 멈추지 않았을까. 그는 책에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태평양전쟁을 다룬 최초의 통사로 1972년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 책은 일본 제국의 상승과 쇠망의 연대기를 모조리 담았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1931년 만주사변부터 중일전쟁, 진주만 기습 공격,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반격에 나선 미국이 일본 본토에 원폭을 투하하고 천황이 항복하기까지 일본의 야욕과 굴욕의 역사를 빠짐 없이 기록했다. 이를 위해 톨런드는 천황의 최측근부터 진주만 공격 등을 실제로 진두지휘 한 제독, 전쟁 포로와 민간인 생존자들까지 5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어전회의 기록 등도 모아 철저하게 고증 작업을 거쳤다.

약자가 강자를 선제 공격한 ‘기묘한 전쟁’. 일본 천황과 군, 정치 지도자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 전쟁이 종국에 비극적으로 끝날 것임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이 독일과 이탈리아와 체결한 삼국동맹에 반발한 미국과 연합군이 일본의 자산동결 조치를 취하자 일본은 추가적인 협상에 나서는 대신 전쟁을 선택한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을 치를 만한 능력도 의지도 부족했다. 해군 지도부는 싸워보기도 전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고, 천황 역시 “절망적인 전쟁”이라 언급한다.

미국이 일본 본토에 대한 첫 화염폭탄 공격을 감행한 1945년 3월 10일 도쿄 도심이 초토화 됐다. 건물은 모두 주저 앉았고, 길거리에는 불 탄 시체들이 널려 있다. 이 공격으로 14만명이 사망했다. 글항아리 제공
미국이 일본 본토에 대한 첫 화염폭탄 공격을 감행한 1945년 3월 10일 도쿄 도심이 초토화 됐다. 건물은 모두 주저 앉았고, 길거리에는 불 탄 시체들이 널려 있다. 이 공격으로 14만명이 사망했다. 글항아리 제공

그럼에도 이들은 결국 ‘Z’작전이라 불리는 진주만 공격을 감행한다. 톨런드는 그 배경으로 군국주의를 지목했다. 책의 서두를 연 ‘2ㆍ26 황도파 쿠데타’는 그 시작이었다. 1936년 도쿄 시내를 점거한 무장 군인들이 총리 공관, 각료, 원로들을 일제히 습격한 이 반란은 천황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곧바로 진압됐다. 하지만 기존 정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천황이 군부의 지지 아래 직접 통치해야 한다는 황도파의 주장은 일본 사회에 군국주의의 망령을 꿈틀거리게 했다.

때마침 동맹국 나치 독일이 승승장구하던 시기였다. “버스를 놓치지 말자”는 구호가 고개를 들었다. 일본도 한몫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회주의적 욕심이 국가 전체의 판단력을 마비시켰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수는 인과의 수레바퀴에 휩쓸린 채 그저 흐름을 따랐다. 말하자면 맹목적 변화의 길 위에 고분고분하게 조용히 누워 있었다.” 군국주의 등에 올라탄 일본을 저지할 브레이크는 없었다. 개인은 집단과 국가에 철저히 종속됐고, 파괴됐다. 가미카제는 섬뜩한 광신적 집착의 산물이다.

허황된 욕심과 야심의 결과는 파멸이었다. 300만명이 넘는 군인과 민간인이 죽고, 원자폭탄을 맞고 나서야 백기를 들었다. ‘인육 수프’를 먹을 생각에 동료의 죽음을 기뻐하는 패잔병들, 아비규환이란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참혹한 현장을 기록한 장면에선 일본이 과연 이 전쟁으로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그러나 파국은 끝나지 않았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은 또 다시 군국주의로 회귀하려 들고 있다. 마치 이를 예견한 듯한 톨런드의 말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나는 각각의 사건이 스스로 말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얻어낸 결론은 역사에서 단순한 교훈은 없으며 반복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현재로부터 과거를 배울 때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많다." 전쟁 가능한 나라를 꿈꾸며 인류 보편의 가치를 무시하고 폭주하는 일본에게 책은 묻고 있다. ‘태평양전쟁의 처참한 패배와 희생의 기억을 잊어버렸나. 그게 아니라면 다시 그 악몽을 겪을 각오가 돼 있다는 것인가.’

일본제국패망사

존 톨런드 지음ㆍ박병화, 이두영 옮김ㆍ권성욱 감수

글항아리 발행ㆍ1400쪽ㆍ5만8,000원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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