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주말 총기참사가 발생한 오하이오주 데이턴과 텍사스주 엘패소를 7일(현지시간) 연이어 방문해 국민 통합과 치유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그간 트럼프 대통령의 분열적 발언이 증오 범죄를 부추기는 환경을 만들어왔다는 ‘책임론’이 계속되면서, 두 지역의 정치인과 시민 사회는 대통령 방문 소식에 “오지 말라”며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트위터에서 “내일 데이턴과 엘패소를 찾아 구급대원, 경찰관, 일부 참사 피해자들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호건 기들리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이 지역을 찾아 주민들과 함께 슬퍼하고, 기도하며, 조의를 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AP통신은 대통령 측근을 인용 “분열을 바탕으로 번성하고, 문화ㆍ경제ㆍ인구학적 변화에 대한 불협화음과 불안을 재선의 성공 열쇠로 여기는 대통령에게 그것은 힘든 과제일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책임론’이 계속되고 있다. 엘패소 사건 총격범이 범행 직전 인터넷에 “텍사스에 대한 히스패닉 침략(Invasion)” 등 인종차별적 문구가 담긴 선언문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침략’이라는 표현이 트럼프 대통령이 수차례 반(反)난민 정책을 추진하며 사용해 온 수사이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그가 여섯 차례 트위터를 통해 남부 국경에서의 이민자 유입을 ‘침략’에 비유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비판이 계속되자 지난 5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한 목소리로 인종주의와 편견, 백인우월주의를 비난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백인 유권자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 전략으로 연설 등에서 인종ㆍ종교ㆍ정체성 분열을 이용해왔다고 지적했으며, 로이터 통신도 정작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과거 발언에 대한 언급은 빠뜨렸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오하이오주와 텍사스주로 떠나기 직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에 대한 비판자는 정치적인 사람들”이라며 국가 분열의 책임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우는 사람들에 대해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 소식이 전해지자 야당인 민주당 중심으로 지역 정치인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 방문 행사 초청에 불참을 선언한 민주당 소속의 베로니카 에스코바르 하원의원(텍사스)은 “우리가 애도하는 동안 그가 이곳에 와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민주당 대선 후보이자 엘패소 출신인 베토 오로크 전 하원의원도 “우리는 더 이상의 분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치유해야 한다. 그(트럼프)가 있을 곳은 여기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발표했다.
시민 사회도 냉랭한 분위기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이 위로를 줄 것인지, 원한을 부추길 것인지에 대해 엇갈린 감정이 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증오범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가 진행 중인 엘패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분위기가 더 험악하다고 미 언론들은 설명했다. 엘패소 참사가 벌어진 월마트 인근의 임시 추모소를 찾은 시민 데이비드 라바레스는 6일 WP에 “우리는 증오, 분노, 인종차별의 불길을 부채질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에 반감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참사 현장 방문이 환영 받지 못하는 게 처음은 아니라고 WSJ는 전했다. 지난해 2월 발생한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고교 총기난사 사건 당시 생존자, 학생 및 학부모는 대통령 방문이 아닌 조치를 원한다며 항의했다. 또 같은 해 10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생명의 나무’ 유대교회당에 테러가 발생하자, 유대교 지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민족주의를 완전히 규탄하기 전까지는 피츠버그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보낸 바 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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