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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노 저팬’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입력
2019.08.07 18: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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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 본부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강제징용 판결을 부정하는 아베정권 규탄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의 얼굴이 프린팅된 손팻말에 법원 압류딱지를 부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 본부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강제징용 판결을 부정하는 아베정권 규탄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의 얼굴이 프린팅된 손팻말에 법원 압류딱지를 부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36년 간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과거사에 대해 일본은 반복해서 사죄를 했다고 말하고, 한국은 일본이 사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은 여러 차례 사죄를 했다. 1995년 출범한 3당 연립내각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제81대ㆍ사회당) 총리의 최초 사죄를 필두로 하토야마 유키오(제93대ㆍ민주당), 간 나오토(제94대ㆍ민주당) 총리가 각의 결정에 따른 사죄 담화를 발표했다.

2010년, 한국 병합 100년에 즈음하여 발표한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는 매우 구체적이다. “정확히 100년 전 8월, 한일 병합조약이 체결되고,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3ㆍ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ㆍ군사적 배경 아래 당시 한국 사람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로 인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돌아보는 일에 솔직하고자 합니다.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여기에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일본의 사죄를 ‘말뿐인 사죄’로 의심한다. 일본인은 ‘과거를 올바르게 보는 독일인과 그렇지 않은 일본인’이라는 식의 비교에 넌더리를 낸다지만, 도리어 한국인들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의도된 실언을 내쏟고 사임을 택하는 일본 고위 공직자들의 ‘카미가제식 망언’에 더 넌더리를 낸다. 독일이라는 모범이 잘 가르쳐주듯이, 사죄에 뒤따라야 할 추념 사업과 역사 교육이 빠진 사죄는 사죄가 아니다. 지난 8월 3일, 나고야 시에서 열린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평화의 소녀상’전시가 저지된 것을 보고 속았다고 생각하지 않을 한국인은 없다.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판결’은 일본이 불가역적으로 여기고 싶은 식민지 지배 죄과를 다시 들추어냈다. 단교(斷交)까지 들먹였던 일본은 지난 8월 2일,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 시켰다. 이에 한국민은 ‘노 저팬(일본 거부)’운동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제서라도 한국은 일본의 전후 정치 상황을 개괄할 필요가 있다. 미리 적어 놓았듯이, 자신의 과거사를 직시하면서 적극적으로 사죄를 표명한 일본 총리는 모두 자민당이 아닌 사회당과 민주당 출신이다. 이 사실은 한국이 친구와 적으로 삼아야 할 일본에 대해 명징하게 가르쳐준다. 노 저팬이란 반(비) 자민당을 친구로 삼고, 자민당과 절연하는 것이다.

1955년 11월에 창당한 자민당은 국체수호(천황제)ㆍ친미ㆍ반공ㆍ과거사 거부라는 보수주의 임무로 결집한 정당이다. 앞서 인용한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가 나오자 야당이었던 자민당은 적대감을 드러냈다. 당시의 자민당 총재 다니가키 사다카즈는 “담화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에 방해물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말했고, 이선으로 물러나 있던 전(前) 총리 아베 신조는 간 나오토에 대해 “자기 믿음만으로 선의를 보여주면 된다는 건 큰 잘못, 어리석은 총리”라고 말했다. 자민당은 ‘무라야마-하토야마-간’의 사죄 담화가 국가의 방침이 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아베는 앞서 나열한 자민당의 임무에 또 다른 사명을 추가했다. 바로 전쟁과 정규군 보유를 금한 헌법 제9조를 개헌하는 것이다. 일본이 막상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된다면, 어떤 계기로 누구와 제일 먼저 전쟁을 벌일까? 자민당이 정권을 쥔 일본이라면 반드시 독도를 기습 점령할 것이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유사 이래 일본은 한 번도 한국을 근린국으로 존중해 본 적이 없다. 가토 요코의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서해문집, 2018)를 보면, 일본은 섬이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지구전을 벌일 수 없다고 한다. 때문에 일본은 항상 진주만 공습과 같은 기습에 의지했다. 아베의 화이트 리스트 선공도 말하자면 기습이다. 한국이 이기는 방법은 여러 나라와 관계를 맺어 지구전에 대비하는 것이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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